별리別離
일찍이 괴테는 “외국어를 모르면 자기 자신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말의 뜻은 무엇일까? 외국어는 외국을 전제로 하니 결국 외국을 알면 자기 자신을 알게 된다는 말이다. 그런데 외국을 알려면 자신이 살던 곳을 반드시 떠나야 한다. 이별을 해야 한다. 그러면 고향을 떠남과 동시에 어쩔 수 없이 이방인이 된다. 이방인이 몸소 돼봐야 비로소 자기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를 안다는 말이다.
이런 이방인에 대해 사회학자라면 당연히 흥미를 가질 법하지만, 관심을 보인 것은 두 명의 사회학자뿐이었다. 게오르그 짐멜Georg Simmel과 알프레드 슈츠Alfred Schutz다. 짐멜은 이방인을 “잠재적 방랑자”로서 “오늘 왔다가 내일 떠나가는 의미에서의 방랑자가 아닌 오늘 왔다가 내일도 머물 그런 사람”으로 정의했다(<이방인The Stranger>). 슈츠는 “[자신이 살던 곳을 떠나] 접근을 시도하는 집단이 영원히 수용해주거나 그게 아니라면 적어도 관용해주기를 바라는 문명 시대의 성인”으로 이방인을 규정했다(<이방인The Stranger>, 이하 짐멜과 슈츠의 인용 중 각자의 논문 <이방인The Stranger>에서 따온 것의 출처는 다시 밝히지 않고 따옴표만 붙임)
이방인에 대한 두 사람의 규정에 딱 들어맞는 인물이 있다면 다른 나라에 이주해 온 이민자다. 물론 내가 보는 이방인은 그들이 규정한 이방인보다는 넓다. 나는 오늘 왔다가 내일 갈 수도 있는 단순 여행객이나 방랑자 또한 일시적으로나마 떠났다는 그 사실만으로도 이방인의 범주에 충분히 집어넣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말하자면 내 관점에서 떠나는 자는 무조건 모두 이방인이다.
디아스포라
그런데 흥미로운 점이 있다. 짐멜과 슈츠는 모두 유대인이다. 유대인은 멀게는 기원전 예루살렘왕국 멸망과 함께 바빌론에서 유배를 당했고, 가깝게는 기원후 로마제국에 의해 강제로 팔레스타인에서 쫓겨남으로써 시작된 이산離散(디아스포라, diaspora)의 전형적 모델 민족이다. 그들은 타의에 의해 조국 땅에서 떠나 세계 각지로 퍼져 살아야만 했다. 1948년 쫓겨났던 옛 땅에 이스라엘을 다시 세운 뒤에도 여전히 많은 유대인이 본토로 돌아가지 못하고 자신들의 언어를 간직한 채 타지를 떠돌며 살고 있다. 그러니 외국어에 능통하고 외국에 대해 잘 알면서 자기 자신까지 아는 민족을 꼽으라면 단연 유대인을 꼽을 수밖에 없다.
자기 자신을 알게 된다는 것은 무엇을 말할까? 크게 보면 생각을 많이 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니 위대한 철학자와 사회학자를 포함한 사상가 중 유대인이 많을 수밖에 없다. 떠남과 이산의 역사가 결국은 수많은 위대한 사상가를 배출한 셈이다. 이방인으로서의 삶이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만든 것이다. 그러니 유대인인 짐멜과 슈츠가 이방인에 직접적으로 흥미를 가진 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것이다.
그리스어로 이방인은 ‘파로이코스πάροικος, paroikos’다. 그것은 시민권 없이 어떤 지역에서 토박이 근처에 일시 거주하는 나그네를 말한다. 중세 유럽에서 유대인은 토지도 갖지 못해 농사도 짓지 못하고, 그렇다고 장인이 되어 길드에 들어갈 수도 없는, 그저 투명인간처럼 살 수밖에 없었다. 영원히 물과 기름처럼 섞일 수 없는 존재로 취급받고 살았던 것이다. 어느 날 갑자기 거주하던 게토ghetto에서 다른 곳으로 쫓겨나도 이상하지 않은 운명에 놓인 것이 유대인이었다. 그러니 그들은 정착했던 곳에서 언제든 떠날 준비를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일이 일어날 때마다 쉽게 챙겨서 길을 나설 수 있는 것은 오직 돈이나 귀금속밖에 없었다. 이 때문에 유대인이 금융업이나 상업에 종사할 수밖에 없었으며, 멸시와 천대, 차별은 이방인이었던 유대인의 전유물이었다.
그러나 디아스포라 이전부터, 훨씬 전부터 이미 유대인은 이방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