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드레 애치먼 소설 〈하버드 스퀘어〉 미리보기
안녕하세요, 〈하버드 스퀘어〉의 홍보를 맡은 이혜진입니다. ‘여름’이란 계절은 참 신기합니다. 막상 여름을 지내고 있을 때는 너무 덥고, 빨리 지나갔으면 좋겠고, 불쾌지수가 높은 계절이란 생각이 드는데. 한 발짝 떨어져서 보게 된 여름은 싱그럽고, 찬란하고, ‘청춘’이라는 단어와 가장 잘 어울리는 계절이란 생각이 드니까요. 그래서 어쩐지 ‘여름’과 ‘대학생 시절’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막상 다니고 있을 때는 과제에 치여, 시험 기간에 치여, 취직을 걱정하느라 그때가 좋은지 잘 모르지만, 막상 사회에 나와 돌이켜보면 ‘그때가 좋았구나-’싶으니까요. 우리 모두에게 그런 시절 하나쯤, 그런 공간 하나쯤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너무 돌아가고 싶지만 다시는 돌아갈 수 없어 애틋한 곳. 청춘의 한 가운데 있었다고 생각되는 곳. 주인공에게는 1977년의 케임브리지가, 하버드가, 여름이 그랬던 것 같아요. 소설을 읽으며 모두가 마음 한편에 품고 사는 그 여름을, 아름다운 청춘을 이 소설을 통해 다시금 느껴보실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안드레 애치먼의 새 소설 〈하버드 스퀘어〉를 미리 보는 마지막 시간입니다. '영.레터'를 통해 소설을 보여드릴 때면 항상 너무 짧은 부분만을 보여드릴 수 없어 아쉽습니다. 더군다나 〈하버드 스퀘어〉와 같이 한 겹, 한 겹 쌓아가는 소설은, 중간을 함부로 뛰어넘을 수도 없기 때문에 더더욱 그렇습니다. 몇 번의 메일로 '나'의 여름을 온전하게 느끼기는 어렵지만, 조금이나마 혹하셨다면 꼭 책으로 〈하버드 스퀘어〉를 만나보셨으면 합니다. 읽으면서 내가 두고 온 '여름'은 무엇일지도 떠올려보면 좋겠지요. 이런 말을 하고 싶었는데, 홍보 담당자가 전해달라고 저에게 넘겨준 글이 제가 하고 싶었던 말을 더 잘 담고 있어 오늘은 먼저 보여드렸습니다. 〈하버드 스퀘어〉는 이르면 2월 중순부터 만나실 수 있습니다. 서점에서 만나실 수 있을 때 다시 메일 드리겠습니다. 저는 2월 중순, 그리고 그 사이 '막간 레터'로 다시 뵙겠습니다. - 담당자 Jay #4. 카페 알제에서 칼라지는 항상 같은 자리에 앉았다. 중앙 테이블. 남들 눈에 띄기 위해서가 아니라 누가 드나드는지 보기 위해서였다. 그는 실외가 아니라 실내를 좋아했고, 지중해 지역에서 나고 자란 다른 모든 사람과 마찬가지로 햇빛보다 그늘을 좋아했다. “여기가 바로 칼라슈니코프가 자리 잡고 총을 쏘는 곳이구먼.” 모우모우가 말했다. 그도 칼라지처럼 택시운전사였고 칼라지 놀리기가 취미였다. 알제리인 모우모우와 튀니지인 칼라지는 서로를 놀리고 성질을 건드리다가 결국에는 농담이 말싸움으로, 더 나아가 격한 언쟁으로 번지곤 했다. 어느 한 사람 혹은 두 사람 모두가 흥분하면 반드시 그런 일이 일어났다. “그는 칼라슈니코프를 다리 사이에 끼우고 앉아서 내가 자기 신경에 거슬리는 행동을 하기만을 기다리고 있어. 아니면 담배 연기를 뿜어대서 질식시켜 죽이려고 하거나, 듣고 싶지도 않은 온갖 푸념을 늘어놓아서 지루해 죽게 만들지. 자기가 만난 여자들, 비자 문제, 치통, 천식, 알링턴 거리에 있는 수도자 독방 같은 자기 방에 대해서 떠들어댄다고. 집주인 여자가 여자를 들이지 못하게 한대. 자꾸 비명을 질러대서 듣기 민망하다나? 또 뭐 빠뜨린 거 있나? 완벽한 야간 시력을 가진 칼라슈니코프. 뭐든지 백발백중이지.” 그들의 언쟁은 전설적이고, 서사적이고, 극적이었다. “난 스라소니의 눈과 코끼리의 기억력과 늑대의 본능을 가졌어”라고 칼라지가 말하면, “그리고 닭의 대가리도”라고 그의 천적인 알제리인이 덧붙였다. 칼라지는 이렇게 대꾸했다. “반면에 자넨 전갈의 얼굴과 입을 가졌지만, 꼬리 없는 전갈, 독이 없는 꼬리, 화살 없는 화살통, 현이 없는 바이올린이지. 더 해야 되나? 아님 알아들었어?” 그는 알제리인의 유명한 발기부전을 비웃었다. 그러면 알제리인도 지지 않고 맞받았다. “적어도 이 전갈은 누구라도 산꼭대기까지 데리고 올라가긴 하거든. 근데 자네와 함께하는 여자들은 기껏해야 두더지가 파놓은 흙무덤 위에 올라가서, 예의 바르게 소리 한번 질러 주인 할머니 잠을 방해하고는 끝이잖아. 원한다면 나도 더 말해줄 수 있는데…….” 알제리인은 겨우 이 주 만에 막을 내린 칼라지의 결혼생활을 암시했다. “하지만 난 그 작은 흙무덤에 데리고 올라간 다음에는 자네가 열두 살 이후론 기억도 없는 일을 해낸다고. 듣자 하니 하루에 네 번이나 약을 먹는데도 별 효과가 없다면서. 새끼손가락 같아서 귀 팔 때나 쓴다던데.” “쉿, 다들 주목!” 알제리인은 이른 아침 카페가 한산해서 투닥거려도 다른 손님들에게 큰 방해가 되지 않겠다고 판단하면 튀니지인의 말을 자르고 큰 소리로 반격을 가하곤 했다. “므시외 칼라슈니코프가 내 남성성에 의문을 제기하네요. 여러분, 용기가 있으면 나 좀 도와줘요, 대신 방탄조끼부터 입으시고.” “오, 우리 아랍 코미디언이 마술 램프에서 나타나시는구먼, 궁둥이부터 치켜들고.” 칼라지는 어제자 〈르몽드〉를 내려놓으며 맞받아쳤다. 그는 하버드 광장 신문 가판대에서 스물네 시간이 지나 아무도 원하지 않는 어제자 신문을 들고 오곤 했다. 가끔은 둘 사이에 몰려오는 폭풍우를 잠재우기 위해서 팔레스타인 사람인 카페 알제 사장이 아랍 노래를 틀곤 했는데, 주로 옴 칼솜의 노래였다. 노래가 흐르고 몇 초가 지나지 않아, 재치를 다투는 싸움은 완전한 정전 상태에 이르렀고, 이집트 출신 여가수의 애절한 목소리가 조용한 카페 안을 가득 채우곤 했다. “소리 좀 높여줘, 더 크게, 제발.” 칼라지가 말하곤 했다. 항상 같은 노래였다. ‘엔타 오므리’, 너는 내 생명. 여자와 함께 아침식사를 하고 있을 때 그 노래가 흐르면, 칼라지는 하던 이야기를 멈추고 노래 가사를 서툰 영어로 직역하곤 했다. “당신 눈을 보니 우리가 함께한 옛날이 생각났어요.” 그는 자신의 눈과 여자의 눈을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당신 눈을 보니 그 옛날의 상처가 다시 아파오네요.” 그러고는 손바닥을 움직여 고통스러운 세월의 흐름을 표현했다. 아침에 우리 둘이 커피와 크루아상을 먹고 있을 때 그 노래가 나오면 그는 나를 위해서도 가사를 번역해주었다. 내가 이집트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기에 가사의 뜻을 웬만큼은 파악하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그가 혼자 앉아 있을 때 그 노래가 흐르면, 컵의 가장자리를 잡고 입으로 가져가다 말고 그대로 들고서 마법에 빠진 것처럼 그 노래를 흥얼거리고는 자신을 위해 프랑스어로 번역을 하곤 했다. 상상 속 지중해 해변의 카페에서 편안하게 막간 휴식을 즐기다가 카페 알제에서 나와 하버드로 걸어가는 게 항상 쉬운 일은 아니었다. 하버드 캠퍼스는 바로 길 건너편에 있었지만, 해가 눈부시게 쨍쨍한 그 무더운 날 아침에는 몇 광년은 떨어진 듯이 느껴졌다. 아침마다 자이냅이 카페 안에 있는 작은 테이블 위에 의자를 엎어놓고 바닥을 닦을 때 나던 표백제와 양잿물의 냄새가 아직도 기억난다. 청소할 땐 손님을 받지 않았지만, 아랍어와 프랑스어를 쓰는 단골손님들은 들어와서 커피를 내릴 때까지 기다리게 해주었다. 커피를 기다리는 동안 티파자 포스터를 보면 언제부터 잊고 있었는지도 모를 바다와 해변의 의식이 사무치게 그리워졌다. 카페 알제의 모든 것이 나를 알렉산드리아로, 칼라지를 튀니스로, 알제리인 모우모우를 오란으로 데려갔다. 우리가 매일 카페 알제에 들르는 건 아마도 우리가 북아프리카에 두고 온 사람을 만나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우리는 삶이 길을 잘못 든 바로 그 순간으로 돌아가려고 애를 썼고, 그것은 마치 골절과 뼈에 간 금, 탈구가 치유되고 뼈가 완전히 붙을 때까지 부목을 대고 기다리는 것과 같았다. 우리는 오전의 태양을 피해 카페 알제로 들어와 강한 커피 향과 세제 냄새를 맡으면서, 자기 어머니에게로 돌아가는 길을 찾았다. Playlist 🎶 : 〈Try to Remember〉 (영상 섬네일이 안 보이시면 상자를 눌러주세요!)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가는 시간, '9월의 노래'라고 부를 법한 곡입니다. 여름 같기도 하고 가을 같기도 한 시간, 바로 <하버드 스퀘어>의 배경이 되는 계절입니다. 지긋지긋한 여름이 끝나기를 바라는 마음과 언제까지고 이런 날들이 계속되기를 바라는 마음. 기억 나시나요? 만일 기억이 난다면, 그 기억을 따라가보세요. - 이승희 편집팀장 ![]() “그는 나보다 딱 세 걸음 앞서가는 내 운명이었다.”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의 작가 안드레 애치먼이 선보이는 새 소설. 지나간 시절의 그리움을 간직한 모든 이들에게 보내는, 고독하고 쓰라렸던 젊은 날의 공백을 찬란하게 채우는 러브레터. 〈하버드 스퀘어〉 🚕 오늘 레터는 어떠셨나요? '피드백 메일 보내기'를 통해 구독자 님의 생각을 들려주세요. 김영사의 출간 전 도서 미리보기 메일링 '영.레터'는 아래 페이지에서 자세히 보실 수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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