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드레 애치먼 소설 〈하버드 스퀘어〉 미리보기
안드레 애치먼의 새 소설 〈하버드 스퀘어〉를 미리 보는 네 번째 시간입니다. 구독자 님은 메일을 어떻게 읽고 계신지 궁금합니다. 지난 메일에서 새로 등장한 장소인 '카페 알제'는 하버드 광장에 실제로 있었던 카페라고 해서, 그 모습이 궁금해 한번 찾아보았습니다. 사진은 밤의 풍경이지만, 대강 어떤 그림이었을지 생각해보는 데엔 무리가 없을 듯합니다. 좁은 카페에서 '따발총을 쏘아대는' 초면의 남자가 좋게 보일 리 없죠. '나'는 그 상황에서 어떤 행동을 하기로 했을까요? 오늘은 〈하버드 스퀘어〉의 홍보 담당자인 이혜진 님이 코멘트를 남겨주셨습니다. 저는 토요일에 마지막 편으로 뵙겠습니다. 즐거운 저녁 보내세요! - 담당자 Jay 안녕하세요, 〈하버드 스퀘어〉의 홍보를 맡은 이혜진입니다. 여러분은 첫인상이 별로였던 누군가와 친해진 경험이 있으신가요~? 저는 첫인상을 꽤나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이라, 주인공과 ‘칼리지’가 친해지는 장면이 참 신기했습니다. 따다다다 기관총을 발사하듯 누군가에게 목소리 높여 언쟁을 벌이고 있었던 칼리지의 모습은, 누가 보더라도 쉽게 호감을 갖기 어려운 모습이었기 때문이죠. 만약 제가 주인공이었다면 칼리지와 친해질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답니다. 사실 주인공도 처음부터 그에게 호감을 느낀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함께 시간을 보내며 어딘가 모를 동질과 연민을 느끼고, 서서히 그에게 빠져들게 되죠. 비단 주인공뿐만 아니라, 이 책을 함께 읽어나가는 독자라면 모두 ‘칼리지’에게 비슷한 감정을 느낄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당시에는 몰랐지만, 시간이 지나고 점점 더 선명해지는 것들이 있죠. 아마 칼리지에 대한 주인공의 마음이 그랬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어쩐지, 끝에 소개해드릴 이 노래의 가사가 더욱 와닿네요. “젊은 날엔 젊음을 잊었고, 사랑할 땐 사랑이 흔해만 보였네 하지만 이제 생각해 보니 우린 젊고 서로 사랑을 했구나” #3. 그는 많아야 서른네 살 정도로 보였고 주머니가 많이 달린 빛바랜 군복 윗도리를 입고 있었으며, 헤밍웨이를 닮으려고 노력한 듯 턱수염을 기른 미국인 대학생에게 마그레브 억양이 섞인 프랑스어로 말을 하고 있었다. 미국인 대학생은 가끔 용기를 내 정중한 프랑스어로 뜨뜻미지근한 반론을 제기했고, 그러는 동안 따발총 입은 숨을 고르면서, 컵 손잡이가 사라지기라도 한 것처럼 가장자리를 잡아 들고 천천히 커피를 홀짝였다. “하지만 모든 미국인을 일반화하면 안 되죠.” 어린 헤밍웨이가 말했다. “인간은 저마다 다르고 특별하니까요. 그리고 중동 지방에 대한 당신의 견해에도 동의할 수 없어요.” 따발총은 의자에 등을 기대고 앉아 몇 번째인지도 모를 담배를 말았다. 그는 종이 가운데 부분에 담배를 채운 후 종이를 돌돌 말아서 풀칠된 끝부분에 침을 묻혀 붙이고는, 리볼버에 총알을 신중하게 재장전하고 회전식 탄창을 돌린 카우보이처럼 뻣뻣한 집게손가락으로 미국인 청년의 관자놀이를 가리켰다. 장전된 권총은 고사하고 손가락질 한번 당해본 적 없는 청년은 깜짝 놀랐다. “자네가 아는 건 전부 개소리만 지껄이는 신문하고 텔레비전에서 보고 배운 것뿐이잖아. 난 나만의 정보통이 있다고.” “어떤 정보통요?” 턱수염 청년이 하느님과 언쟁을 벌이려 하는 소심한 선지자처럼 보이기 시작했다. “다른 정보통.” 북아프리카 출신의 따발총이 날카롭게 맞받았다. 그러고는 청년에게 반대 심문할 기회도 주지 않고, 다시 기름칠하고 조립하고 장전해서 완전히 새로워진 상태로 더 크고 더 또렷하게 기관총을 난사하기 시작했다. 따다다다다다다. 전에도 카페 알제에서 그의 목소리를 자주 들었지만, 그 일요일 늦은 오후에는 망치로 못을 박듯 스타카토로 쏟아내는 그의 말을 못 들은 척하기가 불가능했다. 그는 아닌 척했지만 사실 자기 쪽을 흘끔거리는 사람들의 시선을 분명히 감지하고 있었다. 말하면서도 상대방 등 뒤의 거울을 바라보며 머리 빗질이 잘됐는지 확인하는 사람처럼 단어를 고르고 허세를 부렸다. 그의 말은 세심하게 계획된 듯했고 그의 몸짓과 폭발적으로 뿜어내는 새되고 과장된 웃음소리도 그랬다. 분명한 건 그가 남들이 자신에 대해 궁금해하기를 바란다는 점이었다. 그리고 내가 그를 궁금해한다는 데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이런 사람은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원시적이면서도 완전히 시빌리제(세련된)한 남자. 그는 고고한 신사처럼 다리를 꼬고 앉아 있었지만, 그의 표정과 옷차림과 헤어스타일은 양아치 같았다. 어린 헤밍웨이는 칼라지의 장광설을 열심히 들으면서 그의 비판에서 조금의 상식이라도 끌어내기 위해 슬며시 몇 마디 보탤 기회를 엿봤지만, 탄띠에서 튀어나오는 작은 총알처럼 덜그럭거리며 튀어나오는 비방과 욕설은 도무지 그칠 줄을 몰랐다. 속사포, 칼라슈니코프. 머리 위로 총알이 슝슝 날고 발밑에선 진흙에 묻혀 있던 지뢰가 퍽퍽 터지는 참호 안의 병사처럼 그는 무분별하게 총질하고 폭탄을 터뜨리고 있었다. 어느 순간엔가 나는 더 참을 수가 없었다. 일어서서 그의 테이블로 다가갔다. “말씀하시는 걸 듣지 않을 수가 없었는데요. 두 분 여기 학생이세요?” 내가 프랑스어로 물었다. 대답이 없었다. 그는 무시하는 표정으로 고개를 가로젓더니 곧 사납고 날카로운 눈초리로 나를 노려보았다. ‘학생이든 아니든 무슨 상관인데?’라고 묻는 것 같았다. 나는 이틀간 프랑스어는 물론이고 어떤 언어로도 다른 사람과 대화란 걸 해본 적이 없다고, 같은 건물에 사는 42호, 21호, 43호 사람들과도 멀리서 흘끗 보기만 했을 뿐 어떤 교류도 없었다고 말하고 싶었다. 솔직히 말해서 날마다 옥상 테라스에 앉아 있거나, 여기 홀로 앉아 커피라고 부르는 물 탄 구정물을 마시거나 혼자 식사를 하는 등 어떤 행동을 해도 내 영혼이 위로받지 못했다고 말하고 싶었다. 그러나 우리 사이엔 단호하고 적대적인 눈초리가 수반된 참기 힘든 침묵만 존재했다. 나는 완벽한 타인들의 일에 끼어들어 거리의 부랑자와 그의 졸개하고 잡담이라도 나눌 수 있기를 기대하다니 지극히 어리석었다고 자책하면서, 방해할 뜻은 없었다고 사과한 후 그 자리를 빠져나오려 했다. 그런데 내 자리로 돌아가기 전에, 내 입이 멋대로 주절거렸다. “방해해서 죄송합니다. 프랑스 사람과 말을 하고 싶어서 그만.” 또 노려보는 눈초리. “내가 프랑스 사람이라고? 너 뭐야? 눈이 멀었나? 아니면 귀가 먹은 거야? 이 베르베르인의 피부를 보고도 그런 말이 나와? 여길 보라고.” 그가 자기 팔뚝을 꼬집었다. “이건 프랑스인의 피부가 아니야, 친구.” 마치 내 말에 모욕감을 느낀 듯했다. 그는 베르베르인의 피부를 자랑스러워하고 있었다. “이건 밀과 황금의 빛깔이잖아.” “미안합니다, 내가 실수했네요.” 나는 내 자리로 돌아가서 엎었던 몽테뉴를 다시 집어 들 생각이었다. “자넨 어떤데, 프랑스인이야?” 그가 물었다. 더는 참을 수가 없었다. “이 코를 보고도 그런 말이 나와요?” 그가 나와 장난을 치려는 건가 싶었다. 나는 그가 프랑스인이 아니란 걸 알았고, 그도 내가 프랑스인이 아니란 걸 알아차렸을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 둘은 상대방이 프랑스인처럼 보인다는 듯이 굴고 있었다. 두 사람 모두에게 효과 있는 암묵적인 칭찬이었다. “프랑스인도 아니면서 어떻게 프랑스어를 하지?” 프랑스령 식민지에서 태어난 사람은 누구나 그 질문의 답을 알 것이다. 그는 확실히 장난을 걸고 있었다. “당신이 프랑스어를 하는 것과 같은 이유에서죠.” 내가 대답했다. 그가 웃음을 터뜨렸다. 우리는 서로를 완벽하게 이해했다. Playlist 🎶 : 〈언젠가는〉 (영상 섬네일이 안 보이시면 상자를 눌러주세요!) 사실 〈하버드 스퀘어〉 원고를 읽고 가장 먼저 떠오른 노래가 바로 〈언젠가는〉이었습니다. 너무 옛날 노래여서 아는 사람이 많지 않을까 봐 걱정했는데, 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에서 새롭게 불렸다는 사실을 알고 반가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어렸을 때 〈언젠가는〉을 듣고 노랫말 그대로 언젠가 꼭 다시 만나자는 노래라고 생각했는데... 살아보니 그게 아니었습니다. 그럼에도 부디 잘 있어달라고 당부하는 노래라는 것을 지금은 압니다. 오늘은 다시 만나지 못할 그리운 사람들을 위해 잘 있어달라는 마음을 보내봅니다. - 이승희 편집팀장 ![]() “그는 나보다 딱 세 걸음 앞서가는 내 운명이었다.”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의 작가 안드레 애치먼이 선보이는 새 소설. 지나간 시절의 그리움을 간직한 모든 이들에게 보내는, 고독하고 쓰라렸던 젊은 날의 공백을 찬란하게 채우는 러브레터. 〈하버드 스퀘어〉 🚕 오늘 레터는 어떠셨나요? '피드백 메일 보내기'를 통해 구독자 님의 생각을 들려주세요. 김영사의 출간 전 도서 미리보기 메일링 '영.레터'는 아래 페이지에서 자세히 보실 수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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