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맨다가 방문한 후, 학생들이 던진 질문은 복합적이고 즉각적이었다. 그 이례적인 요청이 어떻게 그들에게 익숙한 공학 속으로 녹아들어갔을까? 어맨다가 주문한 것은 대량생산용이 아닌 한 사람만을 위한, 세상에 하나뿐인 물건이었는데 말이다. 이 특별히 개인적인 가구를 앞에 두고, 의뢰인이 무엇을 원하는지보다 의뢰인의 키에 관해서 묻고 싶다면 어떻게 운을 띄워야 할까? 이미 어맨다는 리틀 피플 오브 아메리카Little People of America라는 단체의 옹호 활동을 강조하면서 학생들에게 기본적인 정보를 주었다. 저신장 장애인 사이에서는 평균 키인 사람들을 “레기leggy, 다리가 긴”라고 부른다고도 했다. 그러나 이야기가 더 진행되기에는 아직 분위기가 어색했다. 내 연구실 같은 공학 실험실에서는 사회적 실천의 일환으로서 물건을 설계, 제작하는데, 기술과 상관없는 질문들로 시작한다. 공학은 실험실에서만의 과학이 아니다. 공학은 근본적으로 어딘가에 적용되는데, 그 말은 그 결과물이 세상에 살아 있다는 뜻이다. 공학의 결과물은 단순한 ‘사용자’가 아닌 주인공으로서 입체적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속해 있다. 그래서 학생들은 머릿속에 있는 다른 것들, 일상에서의 경험에 대해 어맨다에게 묻고 싶었다. 마트에서 높은 선반에 있는 물건을 어떻게 사는가? 운전은 어떻게 하는가? 21세기에 왜소증이라는 단어를 말해도 괜찮은가? 미디어에서 보이는 그들의 모습, 소위 기형 쇼의 추악한 역사와 리얼리티 방송에서 현대적 조명 속에 날카롭게 묘사된 그들의 이미지에 관해 물어도 괜찮을지 궁금해했다. 감히 이런 주제를 꺼내는 것은 말할 수 없이 무례한 행동일까? 그러나 몇 주, 몇 달간 함께 물건을 설계하며 호의적이고 유쾌한 분위기 속에서 마침내 학생들은 어렵사리 이런 질문을 꺼낼 수 있었다. 공유된 물질적 과제는 모든 사람의 시선을 당장의 일에 쏠리게 한다. 그러나 훌륭한 협업은 쉽게 예상할 수 없는 관계에 의해 조직된다. 그런 협업은 노력 없이 오지 않는다. 이 역시 지어지는 것이다.
내가 어맨다의 팀으로 배정한 네 명의 학생은 곧 다양한 디자인을 시험하기 시작했다. 탁자 여러 개를 붙여 작업 공간으로 쓰고, 영감을 얻기 위해 보드에 이미지 수십 장을 꽂아놓았다. 골판지와 종이로 미니 모형과 갖가지 기하학적 형태를 제작했고, 각종 경첩으로 연결된 3차원 스케치를 그렸다. 학생들은 사용하기 쉬우면서 너무 무겁지 않게 펼치고 접는 방식의 강연대를 상상했다. 잘 닳지 않고 견고하면서도 어맨다의 상상과 일치하는 외형을 갖춰야 했다. 어맨다가 바라는 것은 기능적인 면만이 아니라 이중적 의미의 플랫폼으로서 강연장과 그 안에서 어맨다의 역할에 대한 청중의 기대를 뛰어넘는 물건임을 염두에 두어야 했다.
학생들은 여러 조건을 고려해 프로토타입을 제작하기 시작했다. 막연하게 말로만 가능성을 논의하는 대신 직접 만들어보면서 수정과 개조를 거듭하여 아이디어를 시험했다. 화상 채팅으로 어맨다에게 모형을 보여주며 작동법을 설명하고 장점을 호소한 다음, 어맨다의 피드백을 들고 돌아왔다. 보드에 꽂힌 이미지는 어느새 두 배로 늘었고, 임시 작업장의 테이블을 둘러싼 벽에는 연필로 그린 스케치, 컴퓨터 디자인 렌더링, 잡지 스크랩, 여러 개의 작은 모형 등 날것의 가능성이 배치되었다. 모든 공학 및 설계 과정이 거쳐야 하는 결정의 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모든 디자이너가 이구동성으로 말하듯, 시간이 지나도 결코 쉬워지는 법이 없다. 마감까지 남은 시간을 계산해보지만 대개 원하는 만큼의 시간 여유는 없다. 서둘러 아이디어를 실행하고 제작해야 한다.
봄이 왔고, 학생들은 함께 합의하여 결정한 최종 모형을 어맨다에게 전달했다. 3단계를 거쳐 설치할 수 있는 날렵하고 각진 강연대였다. 경첩으로 연결된 넓적한 다리를 펼친 다음 지지대를 세우고 마지막으로 ‘상판’ 부분을 올려 기하학적 기초 위에 고정하면 된다. 이 강연대는 항공 우주 및 자동차 공학에서 흔히 사용하는 검은색 탄소섬유판으로 만들어져서 무척 튼튼하다. 에폭시 용액으로 경화했을 때 직조 구조의 비강도(강도를 비중으로 나눈 값)가 환상적으로 높은 재질이다. 강연대 내부에 자석이 있어서 접합부를 고정시키고, 이동 중 손상을 방지하기 위해 가장자리에 튼튼한 고무를 덧댔다. 사용하지 않을 때는 적당한 두께로 깔끔하게 접어두었다가 필요할 때 펼치면 현대식 갤러리에서부터 칸막이로 나뉜 회의실까지 모든 공간에서 지루한 시간의 활력소가 될 것이다. 공간과 부조화한 이 물체는 등장과 동시에 궁금증을 일으키며 이 세상의 모든 표준 규격을 새로이 두드러지게 할 것이다. 어맨다는 흥분했고 학생들은 스스로 자랑스러워했다. 간단한 2차원 스케치로 시작해 한 학기 만에 완성품을 제작해냄으로써 이 프로젝트는 학생들의 제작 능력을 한 차원 업그레이드시켰다. 또한 명목상 ‘보조기술’을 다루는 강의였지만 더 큰 프로젝트로 아이디어를 확장하는 계기가 되었다. 어맨다의 강연대, 그리고 다른 비슷한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학생들은 자신의 삶을 포함한 모든 곳에서 보조의 형태를 보기 시작했다.
(중략)
나와 학생들은 모두 평균 신장인 사람들로서 세상을 어맨다처럼 경험한 적이 없다. 어맨다와 함께 설계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어맨다의 장애와 부적합 상태를 통해 어맨다가 가진 전문지식, 그리고 그의 몸이 건설환경과 만나는 관계를 더 깊이 들여다보았다. 덕분에 우리는 보다 계획적이고 창의적인 노선을 따라 세상의 일부를 짓고 다시 짓는 과제를 공유하며 함께할 수 있었다. 어맨다가 방이라는 공간과의 접촉점에서 ‘키가 너무 작다’는 이유로 겪는 거부는 그가 세상에서 얻을 수 있는 경험치의 감소이며, 오직 보조를 받아야만 세상으로 나갈 수 있게 막는 ‘폐쇄’임을 우리는 깨달았다. 그러나 동시에 어맨다의 기발하고 적응력 뛰어난 지각과 디자인 브리프는 놀랍고 절박한 개방opening을 가능하게 했다. 유용성과 유의성을 추구한다는 측면에서 디자인은 새로운 것을 만드는 과정이지만, 시스템이든 시스템의 일부이든 지금 그대로의 세상을 변형하거나, 다시 만드는 것도 포함한다. 어맨다가 새 강연대를 사용할 때 새롭게 달라진 그 비율은 그가 서 있는 방의 규모를 축소시켜 잠시나마 청중의 마음속 눈을 그에게 맞추게 할 것이다. 강연을 마치고 휴대 상태로 접었을 때 방은 다시 원래의 크기를 되찾는다. 이것은 제품의 형태로 던지는 질문으로서 이 강연대가 그토록 효과적인 이유이기도 하다. 만약 이 방의 특징이 새로운 버전에서 지금과 다른 크기가 된다면 어떨까? 우리가 어맨다와 함께 새로운 강연대를 만들어낸 것처럼, 또 다른 무엇이 새로운 눈으로 디자인되길 기다리고 있을까? 학생들은 강연대가 던진 질문 안에서 자신이 어떤 이해관계가 있는지 보고, 자신이나 자신이 사랑하는 이들이 생각보다 훨씬 더 연속적으로 다양한 형태의 부적합을 겪고 있음을 깨달았다. 폐쇄와 개방은 우리 주위의 기기와 가구, 방의 구조, 거리 모퉁이의 보도처럼 몸과 세상 사이의 장벽이 드러나고, 시간과 노력에 의해 그 장벽이 낮아지거나 허물어질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에나 존재한다. 그것은 디자인 분야에서 가장 큰 반향을 불러온 질문을 던지게 한다. 이 세상은 누구를 위해 지어졌는가? 다른 말로 해보자. 몸은 무엇을 할 수 있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