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드레 애치먼 소설 〈하버드 스퀘어〉 미리보기
구독자 님은 친구와의 첫 만남을 기억하시나요? 다른 사람들도 그런지 궁금한데, 저는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첫 만남에 대해 이야기하게 될 때가 종종 있습니다. 많은 친구들과의 첫 만남은 떠올릴 때마다 유쾌하고 즐겁습니다. (아무래도 보통은 그런 자리에서 새로운 친구를 만들곤 하니까요) 개중 어떤 친구는 처음 만난 날에 `저 사람과 친해지고 싶다`라고 생각했는데, 정말 친해지게 되어 신기하기도 합니다. 많은 친구들의 첫 만남이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지만, 간혹 첫 만남이 별로 좋지 못한 기억으로 남아있는 친구도 있었습니다. `쟤는 왜 저러지?` 하는 식으로요. 하지만 첫인상이 그렇다고 친해지지 못하라는 법도 없지요. 그러한 인상 때문에 결코 가까워질 수 없을 것 같던 사람과 관계를 형성한 후 다시 그때를 돌이켜보면, 뭐라 설명할 수 없는 어딘지 묘한 기분이 듭니다. 타인이라는 존재가 대개 그런 것 같습니다. 낯선 사람의 낯선 말투와 행동은 거부감을, 때론 불쾌감을 불러일으키지요. 우리는 어쩌다 그러한 사람들과 가까워지고, 또 관계를 형성하게 되는 것일까요. 안드레 애치먼의 새 소설 〈하버드 스퀘어〉의 책장이 순식간에 넘어간 것도, 우리가 타인을 만나면서 흔히 느끼는 미묘한 감정들을 섬세하게 잡아냈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를테면, 이러한 이야기는 비단 소설 속의 이야기일 뿐만 아니라 '나'의 이야기이기도 한 것이지요. 그래서일까요? 〈하버드 스퀘어〉에는 주인공인 '나'의 이름이 나오지 않습니다. 오늘은 〈하버드 스퀘어〉를 함께 편집한 이승희 편집팀장님이 코멘트를 남겨주셨습니다. 그럼 저는 목요일에 뵙겠습니다. 즐거운 저녁 보내세요! - 담당자 Jay 추신. 오늘도 말미에 글을 읽으며 함께 들으면 좋을 노래를 붙여두었습니다. 안녕하세요? 담당 편집자와 함께 〈하버드 스퀘어〉를 진행한 편집팀장 이승희입니다. 이 책에는 '나'의 이름이 나오지 않을 뿐만 아니라 나와 칼라지의 관계를 정의하는 이름도 등장하지 않습니다. 친밀함을 쌓고 서로에게 위안이 되어주었으면서도 그들은 친구, 동료, 연인 같은 이름으로 서로를 불러주지 않습니다. 칼라지를 앞에 두고 마주하는 것은 늘 '나' 자신의 끝없는 비겁함입니다. 어쩌면 이것은 비겁함에 대한 소설이고 우리는 누구나 조금씩 비겁한지도 모릅니다. 서로에게 무엇이 되어줄 수 없지만 동시에 모든 것이었던 사람이 당신에게도 있나요? #2. 보통 옥상에서 오후 1시 정도까지 있으면, 방으로 내려와 기껏해야 한 시간 정도 더 책을 읽을 힘만 남는다. 어둡고 시원해진 실내가 좋았다. 그 후엔 도서관에 가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책을 좀 더 읽곤 했다. 거길 나와서는 되도록 실내 카페를 찾아 하버드 광장 주변을 돌아다녔고, 이곳저곳 옮겨 다니다가 집에 들어와서 자곤 했다. 지금 카페 알제에 앉아 있는 나와 다른 손님들 사이, 나와 통제할 수 없는 여름 사이엔 몽테뉴의 《수상록》 두 권이 놓여 있었다. 나는 거기 나온 수필을 꼼꼼히 다 읽겠다고 로이드-그레빌 교수에게 약속했었다. 몽테뉴를 다 읽은 후에는 파스칼을 읽겠다고 약속했다. 유럽의 그저 그런 문인들이 지은 단편 소설은 본인들이 즉흥적으로 썼다고 주장했으니 나도 슬렁슬렁 읽어 내려갈 생각이었다. 카페 알제에선 온종일 죽치고 있을 수 있었다. 카페 알제는 하버드 광장 옆에 있는 작고 어수선한 반지하 카페로, 작고 흔들거리는 테이블 십여 개가 놓여 있어 금방이라도 무너져 내릴 듯한 미니어처 카스바를 연상시켰다. 적정 면적의 10분의 1도 안 되는 공간에 어떻게 그 많은 테이블과 의자, 커다랗고 고풍스런 에스프레소 기계를 다 배치하고 부엌까지 만들었는지 그저 놀라울 뿐이었다. 카페 주인은 요리와 계산, 접대와 청소를 부업으로 하는 공학자가 틀림없었다. 카페 알제에서는 커피와 주스, 랩 샌드위치, 케이크 등을 팔았다. 날씨가 좋으면 마운트 오번 거리 쪽 카사블랑카라는 술집과 브래틀 거리 사이의 좁은 통로에 테이블을 몇 개 내놓고 테라스 카페처럼 영업했다. 카사블랑카 바로 뒤의 공터는 주차장으로 썼다. 나는 주말 내내 아무하고도 대화하지 못했다. 일요일이었고 모든 곳이 문을 닫아서, 카페를 옮겨 다니며 하루를 보냈다. 지금은 늦은 오후였다. 이렇게 무덥고 외로운 주말을 한 번 더 보냈다가는 나는 결국 시들어 죽고 말 테고, 나를 그리워하는 사람도, 나의 부재를 알아차리는 사람도 없을 것이다. 43호에 사는 젊은 커플이 떠올랐다. 친구들을 불러 함께 저녁을 먹을 거라고 43호 여자가 말했었다. 가스파초와 양 갈비, 그리고 언제나 빠지지 않는 와인. 남자는 요리하기를 좋아했고 여자는 영국 작가의 산문을 좋아했다. 저녁을 먹고 나선 함께 설거지하며, 남자가 자기 엉덩이로 여자의 엉덩이를 툭툭 치는 장난을 걸 것이다. 여자가 한없이 꾸물거리며 우편물을 꺼낼 때 남자가 옆에 서서 그러는 걸 본 적 있었다. 장난으로, 혹은 ‘자기야, 빨리 좀 할래?’라는 의미로. 그들의 우편함에는 아직 두 개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곧 하나로 합쳐지겠지만. 그날 오후 나는 카페 알제의 비교적 조용한 구석에 앉아 아이스커피 한 잔을 두 시간 반에 걸쳐 아껴 마시면서 몽테뉴의 〈아폴로지 드 레이몽 스봉 레이몽 스봉을 위한 변론〉을 읽고 있었다. 음료를 아껴 마시는 것 자체는 괜찮았다. 그러나 각얼음이 녹아 커피가 물이 되는 걸 보면서도 커피가 반이나 남은 양 행동하자니, 극지방의 만년설을 부채 한 개로 지켜내려 애쓰는 느낌이었다. 그때 나는 그의 목소리를 들었다. 그는 멀지 않은 자리에 앉아서 프랑스어로 말을 하고 있었다. 아니, 말이 아니라 기관총을 쏘고 있었다. 따다다다. 기이하고 초조하고 열띤 목소리로 한 주제에서 다음 주제로 곧장 넘어가면서―무슨 주제든 상관없이― 랩을 하듯 속사포를 쏘고 있었다. 따다다다. 유리가 믹서기 안에서 산산조각 나며 갈리는 소리 같았다. 따다다다다. 공기 드릴이나 동력 사슬톱, 동력 천공기 소리 같았다. 독기와 복수심, 독설이 모든 음절에 콕콕 박혀 있었다. 나는 그가 누군지, 도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 왜 자꾸 목소리를 높이는 건지 알지 못했지만, 한여름의 고요한 일요일 오후, 이 지하 카페에서 들리는 소리라고는 그의 목소리가 유일했다. “위(그래), 위, 위-따다다다다. 비앵 쉬르(물론), 비앵 쉬르-따다다다다. 에 푸쿠아 파?(그런데 왜 안돼?) -따다다다다” 그는 긴 문장들을 정확히 발음하며 속사포로 내뱉었다. 테이블에는 담배와 냅킨, 성냥, 싸구려 라이터, 집 열쇠, 자동차 열쇠, 커피를 사고 남은 잔돈―나중에 그 돈으로 커피를 두 잔 더 주문했다― 등 온갖 잡동사니가 그가 쏘아댄 기관총에서 떨어진 탄피처럼 널브러져 있었다. 따다다다다. 그는 서양 문명과 동양 문명을 똑같이 깎아내렸다. 둘 다 혐오한다고 했다. 자본주의자와 공산주의자, 자유주의자와 보수주의자, 구세계와 신세계, 국제 연맹, 아랍 연맹, 여성 유권자 연맹, 가톨릭 연맹, 중국의 만리장성, 베를린 장벽 등 모든 것을 비난했다. 백인, 흑인, 남자, 여자, 유대인, 게이, 레즈비언, 부자, 빈민, 소, 개 등등. 어느 지중해 지방의 나른한 오후, 뒷다리와 궁둥이를 거칠게 비벼대며 다른 모든 소리를 잠재우는 매미처럼 북아프리카식 프랑스어로 세상 모든 것에 대해 저주를 퍼부었다. 그때 그는 미국 백인들을 레-자메르로크(양키들)라고 부르면서 맹렬히 비난하고 있었다. 미국인은 특대형이고 대용품인 것은 그게 무엇이든 좋아한다고. 어떤 물건이 공장에서 만들어졌고 실제 필요한 크기보다 다섯 배로 큰 데 가격은 두 배밖에 안 된다면, 미국 백인 주부들은 서로 사려고 달려들 것이다. 그들의 유럽식 아침식사는 특대형 대용품이고, 지나치게 긴 담배도, 온갖 재료를 때려 넣은 샐러드를 곁들인 거대한 스테이크 요리도 특대형 대용품이고, 리필한 컵에 담긴 엄청난 양의 커피, 치약 세 개와 칫솔을 덤으로 붙여놓은 민트향 구강 청결제, 자동차, 쇼핑몰, 대학, 심지어 대형 텔레비전과 대형 스크린에 상영되는 장편 서사영화까지 모두 특대형 대용품이다. 곧 알게 될 일이었지만, 이것은 그가 자기 말을 들어줄 사람을 만날 때마다 지불하는 일종의 ‘기본요금’이었다. 그는 제1 세계에서 시작해서 제2 세계, 제3 세계로 넘어갔고, 종국에는 열대 우림에 사는 모든 벌거벗은 미개인을 제거했으며, 불행히도 살아남은 사람들은 그들의 뿌리가 되는 훈족이나, 그들을 어떻게 처리할지 잘 아는 터키인에게, 더 끔찍하게는 기도를 드린 다음 산채로 불태우고 그들의 자식을 선교사로 삼는 예수회 사람들에게 던져졌다. Playlist 🎶 : 〈The Salley Gardens〉 (영상 섬네일이 안 보이시면 상자를 눌러주세요!) 나무에서 잎이 자라나듯 느긋하게 사랑하라는 그녀의 말을 젊고 어리석었던 나는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중략) 언덕에 풀이 자라듯 여유롭게 사랑하라고 그녀는 말했지만 젊고 어리석었던 나는 이제 눈물만 흘리고 있습니다 <Down by the Salley Garden>으로도 잘 알려진 이 노래는 예이츠의 시에 곡을 붙인 것입니다. 우리가 중요한 사실을 제때 깨달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게 인생인 것 같습니다. 기왕 몰랐다면 언제까지고 모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하지만 놓쳐버린 인연과 하지 못한 말들은 먼 훗날 돌아와 생각지도 못한 시기에 훅을 날립니다. 〈하버드 스퀘어〉의 주인공 '나'의 청춘의 아픔이 잽이라면 먼 훗날 찾아오는 깨달음은 훅과 어퍼컷이죠. 여유가 되신다면 꼭 결말까지 읽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이 한마디를 위해 여기까지 읽어왔음을 느끼게 되실 거예요. - 이승희 편집팀장 ![]() “그는 나보다 딱 세 걸음 앞서가는 내 운명이었다.”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의 작가 안드레 애치먼이 선보이는 새 소설. 지나간 시절의 그리움을 간직한 모든 이들에게 보내는, 고독하고 쓰라렸던 젊은 날의 공백을 찬란하게 채우는 러브레터. 〈하버드 스퀘어〉 🚕 오늘 레터는 어떠셨나요? '피드백 메일 보내기'를 통해 구독자 님의 생각을 들려주세요. 김영사의 출간 전 도서 미리보기 메일링 '영.레터'는 아래 페이지에서 자세히 보실 수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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