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만든 물질, 물질이 만든 인간》#1 #영.레터 12. 《인간이 만든 물질, 물질이 만든 인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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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구독자 님. 엄청나게 추운 아침입니다. 무사한 (?) 시간 보내고 계신지요. 🥶
보통 영.레터는 아직 출간되지 않은 책의 일부를 보내드리고 있습니다. 아직 세상에 나오지 않은 책을 가장 먼저 만나는 재미를 드리는 것이 영.레터의 묘미이기 때문이지요. 그 결심을 잠깐 접어두게 된 것은 어느 날의 점심시간이었습니다. 저는 다음 영.레터를 준비하면서 12월 말부터 1월 초까지 출간 예정인 책의 목록을 살펴보고 있었습니다. 그때 과학 도서를 담당하는 홍실이(김영사 홍보실 직원들의 별명입니다)와 같이 커피를 마시고 있었는데, 과학 홍실이로부터 12월에 출간된다는 어느 책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아래 대화는 실제 대화를 간략하게 재구성했습니다.)
👩🏻🔬 인간이 만든 물질이 인간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에 대한 책인데요,
🙋🏻♂️ (심드렁) 무슨 내용인데요?
👩🏻🔬 예컨대 인간은 원래 잠을 끊어 잤는데 시계가 발명되면서 쭉 이어서 자게 되었다던가, 초기의 필름은 흑인의 모습을 잘 담아내지 못했다거나, 크리스마스가 사실은...
🙋🏻♂️ 크리스마스요?
마침 12월 중순부터 크리스마스 직전까지 영.레터를 연재할 계획이 있던 저는, 제가 찾던 바로 '그 책'을 찾은 것만 같았습니다.
🙋🏻♂️ 언제 출간인데요?
👩🏻🔬 12월 초요.
12월 초면, 영.레터를 보낼 시점엔 이미 출간이 되었을 책이었습니다. 이미 출간된 도서를 영.레터로 보내야 한다니! 잠시 흔들리기는 했지만, 크리스마스 시즌에 크리스마스 이야기를 하는 것만큼 재미있는 일이 또 어디 있겠습니까? 그래서 큰 맘 먹고 결심한 영.레터의 열두 번째 책은 《인간이 만든 물질, 물질이 만든 인간》입니다. (책은 이미 출간되어, 각 온・오프라인 서점에서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많관부 😁)
물론 그런 이유로만 책을 고른 것은 아닙니다. 흑인 여성 재료과학자 아이니사 라미레즈Ainissa Ramirez가 쓴 이 책은, 다양한 발명이 우리의 삶을 어떻게 바꿨는지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작가 본인이 밝히기도 했지만, 백인 남성을 중심으로 한 기존 서술 방식에서 벗어나 새로운 관점으로 발명품과 세상의 변화를 바라보는 것이 굉장히 흥미롭기도 하고요. 책을 읽다 보면 '아, 진짜?' 라는 생각이 계속해서 든답니다. 🤓
오늘부터 다음 주까지 보내드릴 글은 2장 〈연결하다〉 의 일부입니다. 이 2장은 강철의 발명부터 강철이 가져온 엄청난 변화까지, '강철'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강철이 당췌 무엇을 연결했는지, 크리스마스 이야기라더니 갑자기 강철은 또 무슨 이야기인지, 조금 이상하지요? 머지 않아 크리스마스의 놀라운 비밀(?)을 알려드릴테니, 크리스마스까지 남은 날짜를 하루하루 세는 기분으로 함께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아무튼, 오늘의 이야기는 약 160년 전인 1865년 4월의 볼티모어에서 시작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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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결 장치
1865년 4월 21일, 볼티모어의 다운타운 거리가 이른 아침부터 사람들로 붐비기 시작했다. 가랑비 사이로 햇빛이 비치는 가운데, 캠던가街 기차역 인근 도로는 엄청난 인파로 통행이 불가능할 정도였다. 업무는 중단되었고, 학교는 문을 닫았으며, 상점은 텅 비었다. 사람들은 흐느껴 울며 열차가 도착하기를 애타게 기다렸다.
사람들이 기다리던 열차가 마침내 에이브러햄 링컨Abraham Lincoln, 1809~1865 대통령의 시신을 싣고 칙칙폭폭 소리와 함께 역으로 들어왔다. 그는 남북전쟁이 끝나고 며칠 뒤인 4월 15일에 숨을 거두었다. ‘링컨 특별호’라고 이름 붙여진 이 열차 안에는 6주 전 두 번째 취임식에서 입었던 양복을 입은 대통령의 시신이 안치되어 있었다. 큰 슬픔에 잠긴 대중은 워싱턴 밖에서도 링컨의 장례가 치러지기를 간절히 바랐다. 텔레비전이나 라디오가 없던 시절에 국민이 링컨의 추도식에 참석할 방법은 농장을 비우거나 상점을 닫고 링컨의 시신이 안치된 곳으로 가는 것뿐이었다. 그런데 링컨의 장의열차가 전신도 신문도 할 수 없는 방법으로 링컨을 국민들에게 데려다줌으로써 전 국민이 하나가 되어 그를 애도할 수 있었다. 열차는 수도 워싱턴을 출발해 장장 13일에 걸쳐 볼티모어, 해리스버그, 필라델피아, 뉴욕, 올버니, 버펄로, 클리블랜드, 콜럼버스, 인디애나폴리스, 시카고에 들른 후, 링컨의 최종 안식처인 일리노이주 스프링필드로 갔다.
1865년 4월은 미국 역사에 뚜렷한 족적을 남긴 격동기 중 하나였다. 4월 9일에 율리시스 심프슨 그랜트가 리치먼드를 제압해 남북전쟁이 종결되었다는 낭보가 온 나라에 넘실거렸다. 교회 종이 울리고, 폭죽이 터졌으며, 취객들은 환호했다. 하지만 링컨이 암살되었다는 비보가 전해지면서 그런 축제 분위기는 1주일도 안 되어 가라앉았다.
시신 수송을 총괄하는 일은 육군 장관 에드윈 스탠턴의 어깨에 떨어졌다. 그는 링컨과는 기질이 정반대였지만 링컨의 임종을 밤새도록 충성스럽게 지켰고 이제는 미국 역사상 유례가 없었던 대규모 장례를 치르는 어려운 임무를 짊어졌다. 스탠턴은 장례 행렬을 움직이기 위해 철도를 군사 영역으로 지정했고, 개별 노선을 운영하는 철도 회사들은 이에 전적으로 협조해야 했다.
15개 철도 회사를 총괄하는 것은 거대한 프로젝트였다. 이런 이유로 스탠턴은 준비위원회를 구성해 장례 행렬을 움직일 수 있는 전권을 주었다. 준비위원들은 “각 철도 회사들과 함께 시간표를 짜고, 안전하고 적절한 운송을 위해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법적 권한을 부여받았다.” 철도는 몸으로 치면 순환계인데, 당시만 해도 그 몸이 제각기 따로 움직이고 있었다. 도시와 주의 시간대가 지금보다 많았던 데다 체계적이지도 않아서 열차 운행 스케줄을 짜는 것이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1883년에 표준시가 시행되기 전까지 대부분의 동네는 정오(태양의 남중)를 기준으로 시간을 정했다. 따라서 시간을 정확하게 지키려면 동쪽으로 약 20킬로미터 이동할 때마다 시계를 1분씩 늦춰야 했다. 실제로 워싱턴 DC의 정오는 뉴욕에서는 12시 12분, 시카고에서는 11시 17분, 그리고 필라델피아에서는 12시 7분이었다. 이렇듯 국가는 전쟁과 지방시로 쪼개져 통합되지 않은 상태였지만, 귀중한 승객을 실은 이 열차는 제각기 따로 움직이던 지역들을 잠시나마 하나로 꿰맸다.
(중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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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링컨 특별호'는 링컨의 시신을 싣고, 애도하는 국민을 위해 국토를 가로질렀다.
열차 정면에 걸린 링컨의 초상화와 소리를 낮춘 종소리로 열차가 도착하는 것을 알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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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관차는 정면에 링컨의 초상화를 걸고 시속 30킬로미터 정도의 속도로 조심스럽게 달렸고, 역을 통과할 때는 시속 8킬로미터로 속도를 늦추었다. 객차는 모두 9량이었다. 6량은 객차와 화물차, 1량은 경비대 차량, 1량은 시신을 실은 특별차량, 그리고 맨 끝의 1량은 가족과 의장대를 위한 차량이었다.
장의열차보다 10분 먼저 선도열차가 지나가며 소리를 반쯤 죽인 종소리를 울려 링컨의 도착을 알렸다. 종의 추 부분에 가죽을 덧대 소리를 부드럽게 만든 것이었다. 선로변에서 기다리던 사람들은 종이 울리는 소리와 그 뒤에 이어지는 희미한 메아리를 듣고 준비할 때가 되었음을 알았다. 에디슨의 전등이 발명되기 전이었기에, 밤에는 선로변에 화톳불을 피워 어둠을 물리치고 열차가 지나가는 길을 밝혔다.
(중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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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티모어 캠던가 기차역에서 대규모 군중이 비가 내리는 가운데 링컨의 장의열차가 도착하기를 기다리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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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낮으로 사람들이 선로변에 늘어설 때 거기에는 숙연하고도 간절한 마음이 있었다. 선도열차가 보이면 그들은 선로에서 물러섰다. 누군가는 작은 깃발을 흔들었고, 누군가는 말없이 서있었고, 누군가는 찬송가를 불렀다. 15분 후 드디어 장의열차가 왔다. 이 열차가 지나가면 군중은 선로로 들어가 시야에서 멀어지는 열차를 배웅했다. 그러면 끝이었다.
최종 안식처에 안장되기 전 링컨의 시신은 국토를 가로질러 약 2,600킬로미터의 선로를 따라 수송되었다. 참석한 이들은 수백만 명에 이른다. 거의 모든 미국인이 추도식에 참석한 누군가를 알거나, 운구 행렬을 지켜보았거나, 그도 아니면 열차가 지나가는 것을 보았다. 이 슬프고 어두웠던 시절 미국은 철제 레일을 통해 하나로 꿰어졌다. 하지만 얼마 후 강철을 대량 생산할 수 있는 비법이 나왔을 때 레일은 강철로 바뀌어 훨씬 더 큰 일을 하게 되었다.
뻔히 보이지만 눈길을 끌지 않는 금속 합금인 강철은 미국이라는 나라를 잇는 위대한 연결 장치였다(어찌 보면 물질의 형태로 존재하는 에이브러햄 링컨인 셈이었다). 하지만 강철이 다리를 놓아 미국을 하나로 연결하기 위해서는 강철을 단시간에 대량으로 만드는 레시피를 찾아내야만 했다. 그것을 찾아낸 영국의 발명가는 자신의 발명이 어떤 관습들을 만들어낼지는 상상하지 못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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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돈나가 전적으로 옳았다.
우리를 둘러싼 모든 것은
무언가로 이루어져 있다.
그런데 우리는 물질계에 살고 있을 뿐 아니라,
물질과 춤을 추고 있기도 하다."
아이니사 라미레즈가 전하는
오늘의 세계를 빚어낸 발명의 연금술
《인간이 만든 물질, 물질이 만든 인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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