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아. 네 계획에 반대한다는 말은 아니야. 단지 잘 생각해보지도 않고 어떤 일에 뛰어들고 싶지 않다는 거야. 할 거면 제대로 해야지.” 그 순간 나는 프랜시스가 내 계획에 찬성해줄 것임을 알았다. 프랜시스는 물론이고 나 역시 우리가 하려는 일이 뭔지 아직은 몰랐지만 말이다. 그가 다시 몸을 똑바로 세웠다. “그래서, 세상을 구하기 위한 너의 거창한 계획이 뭔데?”
이럴 때 프랜시스가 나는 가장 좋았다. 그는 용감하지만 주의 깊었고, 호기롭지만 허세를 부리지 않았다.
“1984년에 《로보틱스 혁명The Robotics Revolution》을 썼을 때 그 마지막 장에서 내가 뭐라고 주장했는지 기억해? 우리는 살아생전에 갈림길에 설 것이다. 어느 쪽 길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인류의 미래가 달라질 것이다.”
“응, 출판사가 그 장을 빼라고 압력을 넣었지.”
“그렇게 되지 않아 다행이야. 가장 유력한 미래, 즉 우리가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맞이하게 될 미래에 로봇 지능은 독자적으로 발전하고, AI는 혼자서 점점 더 영리해질 거야. 그러면 인간의 지위는 결국 애완동물이나 해충의 지위로 강등되겠지.”
“그건 할리우드 영화에 자주 나오는 암울한 미래잖아.”
“맞아! 내가 주장한 대안은 인류가 AI와 융합하는 미래였어. 인류도 AI도 혼자서는 할 수 없는 일을 할 수 있는 방향으로 인류의 능력을 증폭하는 거지. 인류와 AI의 협업이랄까.”
“그 미래야말로 MND 환자와 심각한 장애인, 그리고 노인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지?”
“맞아! 우리는 이미 갈림길에 와 있어. 지금 선택해야 해! 일반 대중은 그걸 깨닫지 못하고 있어. 정치인도 마찬가지고. 하지만 IT 산업은 눈치채고 있어. 함구하고 있을 뿐이지.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에 사람들의 관심을 끌고 싶지 않으니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데?”
“우리는 ‘AI가 독자적으로 발달하는 미래’로 치닫고 있어. 합의는 고사하고 논의한 적도 없이 무턱대고 그쪽으로 가고 있지. 다른 길, 다른 미래가 존재한다는 걸 지적하는 사람조차 없어. 이러다 우린 고속도로 출구를 지나쳐버리듯, 다른길로 들어설 타이밍을 놓치고 말 거야. 되돌아갈 방법은 없어. 한번 지나치면 다시는 그 길을 선택하지 못할 거야.”
“오, 맙소사!”
“다른 미래의 가능성은 지금도 이미 희박해지고 있어. 하지만 적어도 AI가 독자적으로 발전해가는 길 대신 인간과 협업하는 길로 미래를 끌고 갈 방법이 있다고 생각해. 어디까지나 우리가 그런 미래를 원한다면 말이지.”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에서 좋아할 스토리군!”
“그럴 거야. 지금껏 없던 시나리오니까. 무슨 말을 하고 싶으냐면, 내가 지난 1년 동안 생각해온 MND와 함께 번영하기 위한 계획이 열쇠가 될 수 있다는 거야. 내 계획은 만인을 위한 ‘AI와의 협업’을 연구하고, 그 성과를 보여주는 멋진 기회가 될 거야. 생각해봐. 심각한 장애를 앓는 수백만 명의 번영, 혹은 수십억 노인의 번영이라는 목표를 반대할 사람이 어디 있겠어?”
“없겠지. 신 행세하는 거냐고 비꼬는 패거리를 빼고는 아무도.”
“J. F. 케네디가 10년 내에 달에 가겠다고 선언한 것만큼이나 대담한 목표이긴 해. MND는 해결하기 쉽지 않은 문제이기 때문에 AI와의 협업을 보여주기에 적격이지. 나는 인간 기니피그 역에 적임이고 어쩌면 최고의 두뇌와 최고의 기업 중 몇몇이 이 계획에 관심을 보일지도 몰라. 그렇게 되면 ‘모든 게’ 달라질 거야.”
“무슨 말인지 알겠어. 그런데 왜 너와 내가 함께 보낼 수 있는 얼마 남지 않은 귀중한 시간을 희생해야 하지? 월급을 받고 이런 것들을 고민하는 사람들한테 맡기면 안 돼?”
“왜냐하면 우리가 하려는 그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우리 말고 없을 것 같은 예감이 들기 때문이야. 아무리 둘러봐도 누구 하나 시도하려는 기색도 없어. 하물며 MND 환자 중에 그런 생각을 가진 사람이 있겠어? 반대로 현 노선을 유지하려는 세력은 막강해. 이대로 두면 미래는 잘못된 결말로 가게 되어 있어. 하지만 다른 미래를 제시할 기회가 아직은 있어. 인간을 위협하지 않는 더 안전한 다른 길을 우리가 제시할 수 있어.”
호화 요트 한 척이 정박소를 떠나 외항으로 향하고 있었다. 거대한 흰 돛이 우뚝 솟은 돛대를 따라 서서히 올라갔다. 우리는 바쁘게 오가는 선원들을 바라보았다. 그때 프랜시스가 나를 돌아보았다.
“이제 그만 가는 게 좋겠어.” 프랜시스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다른 미래는 앉아서 기다린다고 오는 게 아니잖아!” 그 말을 듣자 갑자기 기분이 좋아졌다. 우리는 선창을 따라 요트와 속도를 맞추며 되돌아갔다. 요트가 오른쪽으로 방향을 돌려 정박소를 빠져나갈 때 우리는 왼쪽으로 돌아 해변으로 향했다. “네가 말하는 다른 미래가 우리한테 정확히 어떤 모습일지 설명해줘. 일단 세상 사람들은 잊고. 물론 우리 둘만의 일이 아니라는 건 알아. 하지만 난 그 다른 미래가 우리 둘에게 어떤 것일지 궁금해.”
우리는 해안 산책로를 따라 계속 갔다. 오른쪽에는 큰 카나리야자가 늘어서 있고, 왼쪽으로는 아침 햇살에 반짝이는 푸른 바다가 보였다.
“우선, 너도 알다시피 나는 사실상 사이보그가 될 거야.”
“넌 처음 만났을 때부터 그런 이야기를 했지. 근데 네가 하려는 일을 있는 그대로 말하면, 대부분의 사람이 귀를 닫아버릴 거야. 너한테는 근사한 생각일지도 몰라도 그들에게는 기분 나쁘고 심지어는 섬뜩한 얘기지. 그런 건 SF 영화에나 나오는 스토리라고 생각하니까.”
“맞아. 하지만 이건 픽션이 아니라 사실이야! 내가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것의 극히 일부라도 실행에 옮길 수 있다면, 나는 인류 역사상 최초로 완전한 사이보그가 될 거야.”
“옛날부터 장기이식을 한 사람들을 사이보그라고 부르지 않았나?”
“그건 그래. 사이보그의 정의에 따라서는 페이스메이커를 장착한 사람도 ‘사이보그 생명체’가 될 수 있어. 그런데 내 경우는 완전한 교체야. 나의 거의 모든 것이 불가역적으로 바뀌게 될 거야. 몸도 뇌도.”
“아, 휴게소가 문을 여나 봐. 커피 한잔할까?”
우리는 길을 건너 야외에 놓인 테이블 사이를 통과해 쌍여닫이문이 있는 가게 입구로 향했다. 길쭉한 실내는 너덜너덜한 벽, 노출된 에어컨, 잡다한 그림과 거울, 가구가 놓여 뉴욕의 다락방 분위기를 풍겼다. 빈자리가 둘뿐이어서, 우리는 평소 즐겨 앉는 큰 창가 자리를 선택했다. 매장 한가운데 있는 그 자리에서는 포구가 보였다. 실내 분위기에 걸맞게—젊고 날씬하고 텁수룩한 수염을 기른—힙스터 분위기를 풍기는 웨이터가 주문을 받았다. 카페라테 더블 샷 두 잔을 시킨 후 나는 말을 계속 이어갔다.
“말할 필요도 없이, 내 몸에서 현실 세계와 물리적으로 접촉하는 모든 부분은 로봇으로 대체될 거야. 그 결과로 나의 오감은 필연적으로 강화될 거고.”
“필연적으로!”
“그보다 훨씬 더 중요한 건 내 뇌의 일부와 외적 페르소나의 모든 것이 AI로 대체된다는 거야. 즉, 완전한 인조인간이 되는 거지.”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
“‘원래의 나’, 즉 피터 1.0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된다는 뜻이야. 새로운 나, 즉 피터 2.0에서는 원래 뇌의 대부분(기본적으로 동작을 관장하는 부분이라서 결국에는 기능을 멈추게 된다)이 인공두뇌에 의해 확장될 거야. 반면 내 몸은 눈을 제외하고는 단순히 뇌를 움직이기 위해서만 존재하게 돼.”
“요컨대 연구소 실험대에 놓인 뇌와 같은 존재가 된다는 거로군. 네가 항상 말했듯이!”
“뭐 대체로 그와 비슷한 형태로 세계와 소통하게 되겠지. 멀리 있는 상대와 인터넷을 통해 로봇을 원격 조종하면서.”
“하지만 나는 너와 소통하고 싶어. 네가 세상과 어떻게 소통하든 그건 상관없어. 나는 로봇이 아니라 내가 반려자로 선택한 사람과 소통하고 싶다고.”
“다른 말로 설명해볼게. 앞으로 내 일부는 로봇이 될 거야. 그것도 ‘진짜’ 나야. 그러니까 나는 기계 반 생물 반, 디지털 반 아날로그 반으로 존재하는 거지. 내가 계속 나로 살아갈 방법은 내가 알기로는 이것뿐이야. 수다를 떨고, 농담하고, 웃고, 인상을 쓰는 내 인격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계속 나로 살아가려면, 변할 수밖에 없어. 물론 너는 앞으로 내 로봇 몸과 인공 뇌하고만 소통할 수 있겠지만, 그 안에는 원래의 내가 그대로 존재한다는 사실을 너도 알게 될 거야.”
다행히 이 철학적으로 심오하고 감정적으로 심란한 순간, 우리가 주문한 라테가 작은 손잡이가 달린 높은 잔에 담겨 나왔다. 웨이터는 커피콩의 생산지에 대해 친절하게 설명해줄 태세였지만 우리는 굳이 묻지 않았다. 그저 웨이터에게 고맙다고 말하고, 제공된 긴 숟가락으로 라테를 저은 다음 꼭대기에 얹힌 거품을 마셨다. 그러는 동안 우리 둘 다 마음에 여유가 좀 생겼다. 나는 문득, 내가 방금 말한 엄청난 아이디어를 소화하려면 받아들일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사실 나 자신도 이제야 비로소 생각이 정리되는 것 같았다.
“좋아.” 대화를 재개한 것은 프랜시스였다. “네가 생각하고 있는 것을 정확히 말해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