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드레 애치먼 소설 〈하버드 스퀘어〉 미리보기
안녕하세요, 구독자 님. 주말은 잘 보내고 계신가요? 저는 잠시 추운 서울을 떠나, 미국 매사추세츠 주에 와 있습니다. 매사추세츠 주는 많은 것들이 유명하지만, 저는 지금 개중에서도 특히 유명한 하버드 대학교에 와 있습니다. 이 곳은 여름이 한창입니다. Photo by Emily Karakis on Unsplash ...서울이 겨울인데 어떻게 매사추세츠가 여름이냐면요, 안드레 애치먼의 새 소설 〈하버드 스퀘어〉를 읽다보면 그렇게 됩니다. 지난 메일에서 간단히 소개해드린 〈하버드 스퀘어〉의 본격적인 이야기는 오늘부터 시작됩니다. 모두의 청춘이 그랬듯, 젊은이의 세상은 자꾸만 젊은이를 괴롭히고, 젊은이가 가진 졸업과 미래에 대한 불안은 커지며, 여름은 작열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왜 자꾸 그 여름을 그리워하게 될까요. 이미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으로 우리의 추억을 조작하는 것을 성공(?)한 작가 안드레 애치먼이 풀어놓는 이야기를 오늘부터 4회에 걸쳐 보내드리려 합니다. 이번 영.레터에서는 〈하버드 스퀘어〉와 함께 듣기 좋은 음악을 메일 말미에 공유해드리려고 합니다. 네 번째 영.레터에서 소개해드린 소설 〈그날 저녁의 불편함〉 에서 만났던 이승희 편집자가 픽한 음악입니다. 메일을 한 번 다 읽으신 후, 음악과 함께 한 번 더 읽어보시는 것도 좋겠습니다. 오늘의 영.레터는 담당 편집자인 이승현 편집자의 코멘트와 함께 마무리하고자 합니다. 저는 화요일 저녁에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 담당자 Jay "안녕하세요? 담당 편집자 이승현입니다.
여러분은 여름을 좋아하시나요? 사실 저는 여름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습니다. 몸에 열이 많은 제게 여름은 어디로도 도망칠 수 없는, 끝없이 펼쳐진 사막과 같이 여겨지거든요. 그런데 그런 제게도 애치먼이 그리는 여름은 꼭 한번 들어가보고 싶은, 아주 잠시라도 머물고 싶은 공간처럼 여겨집니다. 왜일까요? 매번 여름엔 겨울을 원하고, 겨울엔 여름을 원하는 것처럼 막상 닥치면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괴로워할 게 뻔한데 말이죠. ^^;;
이번에 〈하버드 스퀘어〉를 읽으며 어렴풋이 그 이유를 알게 된 것 같습니다. 애치먼의 여름은 매년 죽지도 않고(?) 찾아오는 괴로운 여름이 아니라, 다신 돌아갈 수 없는, 그래서 너무도 그립고 아련한 한 시절의 기억이었습니다. 특히
〈하버드 스퀘어〉 는 작가 자신의 자전적인 이야기가 담긴 소설이라 문장이 더욱 치밀하고 사실적이어서, 다 읽고 난 이후에 더 깊은 감상에 빠지게 되었어요.
〈하버드 스퀘어〉 속에서 만난 인물들과, 제 기억이 혼재된 새로운 세상이었습니다.
편집자로서 독자 여러분은 또 어떤 새로운 세상을 만나게 될지 무척 기대됩니다." #1. 그때 케임브리지는 사막이었다. 나는 인생에서 가장 더운 여름을 그곳에서 보냈다. 7월 말이 되자 낮에는 더위를 피해 어디에든 들어가야 했고, 밤에는 잠을 설쳤다. 대학원 친구들은 모두 떠나고 없었다. 예전 룸메이트 프랭크는 피렌체에서 이탈리아어를 가르치고 있었고, 클로드는 아버지의 컨설팅 회사에서 일하기 위해 프랑스로 돌아갔으며, 실비아는 오스트리아에서 독일어 특강을 하고 있었다. 실비아는 내게 보낸 편지에서 프랭크 이야기를 했고, 프랭크는 편지에서 실비아 이야기를 했다. 실비아는 ‘아직 스물다섯 살도 안 됐는데 머리카락이 다 빠진다는 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라고 썼고, 프랭크는 실비아가 너무 예민하고 경박하다면서 ‘어디 가서 햄버거 패티나 뒤집는 게 어울리겠다’고 썼다. 나는 어느 편도 들지 않으려 애썼지만, 그들의 사랑이 부러웠고 그 사랑이 깨질까 봐 두려웠다. 당사자들보다 더 걱정할 때도 있었다. 한 명은 내게 자코모 레오파르디를 인용했고, 다른 쪽은 도나 서머를 인용했다. 둘 다 해외에 나가 다른 상대와 짧은 연애를 하고 있었다. 여름방학 특강을 하기 위해 케임브리지에 남아 있던 다른 친구들도 수업이 끝나자 모두 떠났다. 파리, 베를린, 볼로냐, 시르미오네, 타오르미나, 심지어 프라하와 부다페스트에서까지 엽서가 날아왔다. 대학원 동기 하나는 아르쿠아에서 프로방스까지 페트라르카 루트를 따라가고 있다고, 페트라르카처럼 자신도 동료 중세 학자들과 함께 방투 산에 오르려 한다고 썼다. 날카롭고 작은 글씨로 쓴 엽서에서 그는 내년에는 웨일스에 있는 스노든 산에 오를 계획이라면서, 워즈워스를 사랑한다면 꼭 같이 가자고 했다. 독실한 천주교 신자인 다른 친구는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로 성지 순례길에 올랐다. 두 친구는 가을 학기 시작 전에 파리에서 만나 같은 비행기를 타고 돌아올 예정이었다. 나는 친구들이 그리웠다. 별로 친하지 않은 친구들마저도. 그러나 모두에게 빚이 있어서 길어지는 유예기간이 그리 싫진 않았다. 여름학교 학생들이 모두 돌아갔고, 여름마다 하버드에서 수업을 듣기 위해 모여든 외국 학생들도 돌아갔다. 로웰 기숙사는 텅 비었고 문에 쇠사슬로 감긴 맹꽁이자물쇠가 채워졌다. 때로는 그 기숙사에 잠깐 들러 난간동자가 에워싼 안마당에 서 있는 생각만으로도 마치 유럽에 온 듯한 기분 좋은 착각이 일어났다. 경비실 창문을 두드리고 경비원 토니에게 연구실에 갈 일이 있다고 문 좀 열어달라고 할 수도 있었지만, 겨우 일이 분 들어갔다가 나오려고 그를 번거롭게 하고 싶지는 않았다. 여기는 이전과 다른 케임브리지였다. 학생과 교수 대다수가 해마다 7월 말쯤 떠나고 나면, 케임브리지는 다른 모습을, 좀 더 여유롭고 노동자 계급이 중심이 되어 돌아가는 사회의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삶의 속도가 느려졌다. 이발사는 가게 밖에 서서 담배를 피웠고, 쿱의 점원들은 수다 삼매경에 빠졌으며, 카페 애냐츠카의 여종업원은 유리문을 열어둘지 말지, 곧 고장 날 것 같은 에어컨을 켤지 말지 계속 망설이곤 했다. 8월 초 케임브리지의 풍경이었다. 나는 여름 내내 케임브리지에 머물면서, 하버드의 여러 도서관 중 한 곳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시급이 형편없었다. 턱없이 부족한 생활비를 더 벌기 위해 프랑스어 과외도 했다. 그렇게 해서 번 돈 대부분이 임대료로 들어갔다. 그다음 우선순위는 식료품과 담배, 형편 될 때마다 한 잔씩 사 마시는 음료였다. 매달 월말이 되면 어김없이 돈이 떨어지곤 했다. 나는 말끔한 와이셔츠와 넥타이와 재킷을 갖춰 입고 교수 식당으로 가서 저명한 하버드 교수진과 객원교수들 사이에 자리를 잡고 앉아 외상으로 점심을 먹었다. 1월 중순으로 예정된 종합시험 재시 준비를 위해 어딜 가든 책을 갖고 다녔고 식사를 하면서도 책을 읽었지만, 마음속에는 대학원 생활이 이런 식으로 끝도 없이 이어지다가 나도 모르는 사이에 서른이 되고, 마흔이 되고, 결국 죽음을 맞게 될 거라는 우울한 감정이 늘 자리하고 있었다. 아니면 종합시험에 떨어져서 나에 대한 진실이 드디어 밝혀지고, 사람들의 의심이 사실로 드러날 거라는 불안감도 있었다. 내가 학자는 말할 것도 없고 선생의 재목도 아니며, 애초부터 잘못된 투자처였고, 골칫거리, 썩은 사과, 쭉정이였다는 사실이 알려질 것 같았다. 어쩌다가 하버드로 떠밀려 오긴 했지만, 결국에는 쫓겨날 사기꾼이라는 사실이 들통날 것 같았다. 지난 사 년간 이곳에서 내가 한 일은 학교 밖의 무자비한 세상으로부터 숨은 게 다였다. 나를 보호해주고 내가 더 많은 책을 읽을 수 있게 해준 그 벽들을 혐오하면서 책에 파묻혀 산 일밖에 없었다. 나는 대학원 동기들은 물론이고 학과장에서부터 비서에 이르기까지 우리 학과의 거의 모든 구성원을 혐오했고, 그들의 격식을 차리는 태도와 교수직에 관한 수도승 같은 헌신과 의식적으로 소박한 옷을 입는 부드럽고 귀족적인 분위기를 혐오했다. 나는 그들처럼 되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을 경멸했지만, 한편으론 그들처럼 되고 싶어도 될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Playlist 🎶 (영상 섬네일이 안 보이시면 상자를 눌러주세요!) "슬픈 어른은 늘 뒷걸음만 치고 미운 스물을 넘긴 넌 지루해 보여 ... 그때 나는 잘 몰랐었어 우린 다른 점만 닮았고 철이 들어 먼저 떨어져 버린 너와 이젠 나도 닮았네" 제가 생각하는 〈하버드 스퀘어〉의 공식 BGM은 바로 혁오의 〈톰보이〉입니다. 언뜻 듣기에는 청춘찬가 같지만 가사를 잘 살펴보면 꼭 그렇지도 않죠. 젊음이 가진 불안하고 슬프고 고독한 속성을 〈톰보이〉만큼 찬란하게 담아낸 노래가 또 있을까요. 〈하버드 스퀘어〉를 읽으실 때는 〈톰보이〉를 같이 들어주세요. - 이승희 편집자 ![]() “그는 나보다 딱 세 걸음 앞서가는 내 운명이었다.”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의 작가 안드레 애치먼이 선보이는 새 소설. 지나간 시절의 그리움을 간직한 모든 이들에게 보내는, 고독하고 쓰라렸던 젊은 날의 공백을 찬란하게 채우는 러브레터. 〈하버드 스퀘어〉 오늘 레터는 어떠셨나요? '피드백 메일 보내기'를 통해 구독자 님의 생각을 들려주세요. 김영사의 출간 전 도서 미리보기 메일링 '영.레터'는 아래 페이지에서 자세히 보실 수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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