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 재정비되며 사랑 이야기도 시작되었다. 서로가 보내는 애정 신호를 놓치고 엉덩방아도 찧으며 인간과 반려견 사이에서 키워간 사랑 이야기 말이다. 다리가 넷 달린 나의 ‘보즈웰Boswell’은 ‘튤라Tula’라는 이름의 사모예드로, 아름답고 성미가 급하며 용감무쌍한 심장과 트랙터 같은 강인함을 지닌 썰매견이다. 녀석에게 맞추려고 내 허약한 몸뚱이로 중년의 운동선수를 흉내 내다보니, 내 문제가 처음으로 드러났다. 삶을 향해 거칠게 내달리던 튤라는, 자신의 뒤를 절뚝이며 따르는 내가 혼자서는 갈 수 없을 장소로 이끄는 목동의 신성한 막대 역할을 해주었다.
튤라는 내가 넘어지고 일어나고 다시 걷고자 시도할 때 옆에 있어주었다. 그 덕분에 나는 녀석이 바라보는 세상에 그대로 집중할 수 있었다. 개는 현재 시제인 민첩성을 지녀, 어제의 나쁜 소식을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앞으로 돌진하고 좋은 결과를 기대하도록 타고났으며, 기대하는 만큼 미래를 빚어낸다. 튤라가 없었다면 나는 통찰과 육체의 변화라는 협곡으로 휘청거리며 걸어 들어오지 못했을 것이다.
한밤중에 열이 거의 38도까지 오르고 심장이 마구 뛰어 병원에 전화했더니, 의사가 “환자분의 몸은 충격적인 경험을 하고 있어요”라고 말했다. “아주 세심하게 통제되는 충격이지만, 그래도 충격은 충격이죠.” 퇴원하고 집에서 맞는 첫 번째 밤이었고 수술을 받은 지 며칠이 지난 시점이었는데, 열이 오르거나 호흡이 가빠지면 병원에 연락하라는 안내를 퇴원할 때 받은 터였다. 전화를 받은 의사는 졸린 듯한 목소리였으나 내 말에 귀를 기울이는 게 느껴졌다. 나는 그날 낮에 퇴원했다고 말하며 혈압, 적혈구 수치, 산소 농도 그리고 수혈 기록 등 모든 바이탈 체크 결과를 말해주었다.
“굉장히 명료하고 또렷하시네요.” 의사가 말했다. “그 수치가 지금 당장 환자분께 큰 의미는 없지만, 저한테는 상당히 중요하거든요.” 그는 내가 감염으로 인해 극심한 고열이나 정신 혼미에 시달리는 상태가 아니라는 점을 일깨워주었다. “이상 증상 때문에 몹시 괴롭겠지만 위험한 건 아니에요. 모든 증상이 완전히 정상 범주 내로 보이거든요.” 내가 말했다. “다르게 말하면, 불도저 한 대가 방금 막 내게 달려들었는데, 불도저 운전기사는 자기가 지금 뭐하는지 다 알고 있다는 거죠?” “정확하시네요!” 그의 대답에 우리 둘은 웃었고, 둘 다 아니면 나 혼자만일지도 모르지만, 다시 잠자리로 돌아갔다.
입원했을 때 물리치료를 받으며 앞으로 6주 동안 쓸 목발을 어떻게 다루는지 배웠다. 퇴원할 무렵 우리 집에는 지인과 그들이 챙겨온 음식이 가득했고, 군대 매점처럼 없는 게 없이 다 준비되어 있었다. 그러나 퇴원한 뒤 처음 문을 열고 집에 들어섰을 때, 눈에 들어온 것은 내 앞에 놓인 장애물 코스뿐이었다. 모든 계단과 의자, 모퉁이와 비좁은 복도까지. 인간됨의 가장 기본 요소만 갖춘 상태로 집에 돌아온 나는 당분간 완전히 물리적인 세계에서 지내야 했다. 진통제로 통증이 흐릿해진다 한들, 나는 통증에 반응하는 오감의 집합체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나의 우주가 되어버린 통증은 끔찍하다 못해 온 마음을 빼앗아갔다. 영원한 듯 느껴졌지만 아마 일주일인가, 그보다 짧은 시간 동안 오로지 통증의 명령에 따라 살아야만 했다.
“이 수술을 받고 후회하는 경우도 있나요?” 다음 날 아침, 우리 집을 방문한 물리치료사에게 비교적 쾌활하게 물었다. 하지만 사실 나는 무척이나 진지했다. 망가진 듯한 기분이었다. 더 구체적으로 표현하자면, 나 자신을 망가지게 내버려둔 건 아닌가 싶어 심란했다. 지독하고 진저리 나는 일은 이미 일어났고, 결코 회복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리치료사는 기운차고 정중한 태도로 주저 없이 대답했다. “오, 그럼요!” 그의 대답에 움찔했다. 그러자 물리치료사가 덧붙였다. “지금 환자분이 겪는 과정을 대부분 겪어요. 이 터널만 지나면 다들 수술 덕분에 인생이 바뀌었다고 말하죠.”
“그 터널이 얼마나 긴데요?” 내가 물었다. “약 6개월 정도?” “그럼 그중에 가장 끔찍한 구간은 어느 정도 되나요?” 나는 다시 물었다.
그러자 물리치료사가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답했다. “대략 4주 정도예요.”
‘좋아.’ 나는 생각했다. ‘아무리 끔찍한들 인생이 바뀐다는데, 4주 정도는 견딜 수 있다.’
소아마비를 짊어지고 성장한 나의 내력과 이에 대응해 엄마가 보여주었던 불굴의 용기 그리고 거칠게 엄포를 놓던 아빠의 충실함 덕분에, 나는 이야기를 모으고 과거와 현재를 이어붙여 모든 과정을 이해하고 싶어졌다. 내 경험만으로는 인류가 겪은 소아마비의 대서사시를 조금도 표현할 수 없다. 하지만 나라도 쓰지 않으면 개개인의 서사가 사회적 직조물의 한 가닥이 되어 잊힐 위험에 처한다. 서구 선진국에서 소아마비를 직접 경험한 증인들은 이제 중년에 접어들거나 더 나이를 먹어버렸으니까.
무엇보다 나는 희망과 희망의 부재 그리고 어떻게든 살아가는 법에 관해 말하고 싶어 이 책을 썼다. 다시금 내게 주어진 한 차례 기회에 관해서 그리고 기회는 당신이 가파른 내리막으로 가려고 할 때조차 불순물 가운데서 부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리기 위해서. 이야기는 언제든 예상과 다르게 흐를 수 있는 법이다.
희망이 내 주특기는 아니지만, 희망의 물리적 형태가 추진력이라면 나는 그걸 지녔다. 아직도 바닥을 기어다니던 어릴 적 모습을 꿈으로 꾸고, 급속한 물살과 같은 투지와 함께 앞으로 나아가는 온전한 감각으로 몸을 들썩인다. 이건 누군가가 절망을 떨치는 방법이다. 꿈에서라도 몸을 움직일 수 있다면 괜찮다. 그래서 말하고 싶다. 때론 물리적인 힘만 남았을지라도 충분하다고. 뉴턴의 이론에 의하면, 그 힘만 있어도 당신은 결국 어딘가에 다다를 것이다. 희망과 움직임은 미적분 관계다.
아인슈타인이 상대성 이론으로 모든 것을 바꿔놓은 뒤, “빛의 속도보다 느린”이라는 광범하고도 정밀한 과학적 표현이 생겼다. 바로 내가 그런 사람이다. 그게 보통 세계의 속도이며, 나는 그 세계를 취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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