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뒤바뀐 삶, 설명서는 없음 〉 #1 #영.레터 09. 〈어느 날 뒤바뀐 삶, 설명서는 없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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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르드Lourdes와 파티마Fátima를 찾아간 순례자들의 마음을 곰곰이 생각해본다.
은혜로 충만해져 이제 걸을 수 있다고 느꼈을 사람들.
그 충만함은 발을 내딛으며 느낀 순전한 황홀경이었을까?
아니면 의구심이 희망으로, 그다음 기쁨으로 변하는 데서 오는 점진적인 감각이었을까?
그들은 머뭇거렸을까? 아마 약간의 의심이 일었으리라.
'좋아, 이제 다시 걸을 수 있어. 하지만 혹시 모르니 목발은 갖고 있어야지…….'
은혜든 환각이든, 그 경험은 순례자들에게 미미한 용기일지언정 무언가를 안겨주었다.
진짜 과제가 닥친 시기는 분명 그 이후였을 것이다.
그들이 자신에게 일어난 일을 온전히 받아들인 이후 말이다.
기적이 일어났고, 뒤바뀐 인생에 설명서는 없었다.
루르드는 프랑스 남서부에, 파티마는 포르투갈 중부에 위치한 소도시다.
성모 마리아가 발현한 가톨릭 성지로, 매년 많은 순례자가 찾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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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케임브리지
세상이 달라졌다고 처음 감지한 건 개들이 바닥에 바싹 붙어 보였을 때였다. 그 순간에는 ‘잘못 봤겠거니’ 하고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내가 목발을 짚은 탓에 몸을 숙여 녀석들을 쓰다듬을 수 없으니 더 멀어 보이는 게 당연했다. 그때 친구 한 명이 찾아왔다. 지금껏 키가 크다고 늘 생각했던, 매력적인 여성이었다. 거실에서 내 맞은편에 선 그 친구를 보며 나는 행복에 찬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생각했다. ‘틴크Tink의 키가 작잖아! 그동안 전혀 몰랐는데.’
실제로 나와 키가 거의 비슷한 그를 이리저리 올려다보곤 했었다. 나는 지난 5일간 집을 떠나 뉴잉글랜드침례병원 New England Baptist Hospital에서 관절 재건 수술을 받았다. 새 고관절을 삽입한 결과, 오른쪽 다리가 전보다 약 1.6센티미터가량 길어졌다. 수치만으로는 대단치 않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그렇게 치면 원주율 π도 아무런 설명 없이는 큰 의미를 지니지 않는다. 수술을 받은 뒤 길어진 한쪽 고관절 덕분에 내 키는 약 5센티미터나 커졌다. 한쪽 고관절이 길어졌고 더는 통증 때문에 몸을 굽히지 않아도 되었다. 새로 삽입한 고관절은 내가 내 다리로 나아가게 하는 장비가 되어주었고, 측정 불가한 무언가도 안겨주었다. 그것은 땅에 닿을 수 있는 능력이자 생애 처음으로 똑바로 걸을 기회였다.
수술을 받고 초기에는 마치 신체적 자아가 우주에 뜨기라도 한 듯 방향감각이 극적으로 달라진 느낌이었다. 거리의 나무와 자동차 그리고 표지판이 더 가깝게 느껴졌고 전과 달리 모든 것이 손에 닿을 것만 같았다. 이런 신경 적응처음엔 낯선 자극이었어도 반복되면 점차 적응하는 현상이다.에 관여하는 세포들의 노력이 느껴질 정도였다. 특히 야외에서는 발을 앞으로 내딛는 단순한 동작을 할 때도 시각적으로 혼란스러워 휘청거린 다음 수용의 단계에 이르렀다. 빠르고 면밀하게 일어난 이 과정을 충분히 이해하자 모든 것이 변했다.
내가 느낀 단순 어지럼증은 ‘뇌의 발레’였다. 뇌가 시공간을 아우르는 민첩한 안무가가 된 듯 느끼는 현상이 일시적으로 나타났다. 몇 주가 지나자 나는 길어진 다리와 커진 키에 적응했다. 신체는 완벽한 설계 재주를 지니고 있어서, 인지하지 못한 채 맞닥뜨린 상황에도 적응한다. 그러나 수술받은 뒤 며칠 그리고 몇 주간 물리적 세계에서 내가 춘 춤은 더 크고, 더 오래 이어질 무언가의 전조였다. 이듬해 내가 배우고 또 배워야만 했던 것은, 삶은 나름대로 작용하며 앞으로 나아가려는 고유한 움직임과 의지에 따라 흘러간다는 사실이었고, 이 모든 것은 자신의 바람이나 의도보다 거대하다는 개념이었다. 딜런 토머스Dylan Thomas는 그 힘을 “푸른 도화선 속으로 꽃을 몰아가는 힘”<푸른 도화선 속으로 꽃을 몰아가는 힘이 The force that through the green fuse drives the flower>의 한 구절이라고 불렀다. 무엇보다도, 한때 일어난 빌어먹을 모든 일이 꼭 자유 낙하일 필요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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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생후 6개월에 소아마비에 걸렸다. 1951년이었고, 백신이 개발되기 전 미국에서 거의 마지막으로 소아마비 증상이 전염병으로 확산될 때였다. 신경세포를 파괴해 전신 혹은 신체 일부를 영구 마비시키는 바이러스가 내 오른쪽 다리에 영향을 미쳐서 두 돌이 지나도록 걷지 못했다. 그러나 우리 가족이 받은 타격은 비교적 미미했다. 집에 소아마비 구제 운동에서 제공하는 목발이나 철제 폐Iron lung, 과거 소아마비 환자가 사용했던 일종의 인공호흡기는 없었다. 그저 눈에 잘 띄지 않을 정도로 절름거리는 한쪽 다리만 있을 뿐이었다. 분명 중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사항은 아니었던 질병을 나는 아주 오래도록 나 자신을 간략히 소개할 때마다 언급했다. 작가, 텍사스에서 성장, 소아마비로 약간 절뚝거림. 소아마비가 나를 싸움꾼으로 만들었다고 평생 말하며 살아왔다. 소아마비 때문에 필사적으로 강해져야만 했다고. 대부분은 여전히 사실이다. 하지만 지난 몇 년간 어린 반려견을 기르는 기쁨과 더불어 부담을 느끼며 이전에는 없던 통증과 절뚝거림을 경험했다. 이해하기 힘들 정도로 악화된 상태는 앞길에 놓인 두려움 위로 패배의 장막을 드리웠다. 마치 이 질병의 후유증이 다시 모습을 드러낸 듯했다. 마을을 결코 떠난 적 없는 스토커처럼, 음해한 유령처럼 말이다.
그러던 중 의사의 진단으로 약 15년 전쯤 찍었어야 했던 기본적인 엑스레이 촬영을 했고, 내 골반을 지탱하는 받침대가 ‘폐뼈 집적소’와 다름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아무리 내 다리가 소아마비와 타협하며 견뎌왔대도, 받쳐주는 구조물이 없으면 근육이 제 역할을 할 수 없다. 의사는 이 상태로 그동안 걸어다녔다는 사실 자체를 믿기 어렵다고 말했고, 최근 악화된 상태의 상당 부분을 현대 의학에서 가장 흔한 수술로 해결할 수 있다고도 했다. 수술한 다리가 재활을 통해 얼마나 강해질 수 있을지를 비롯한 나머지는 내게 달려 있을 터였다.
중년에 이르러 이야기가 달리 전개된다면 당신은 어떻게 하겠는가? 스스로 당연하게 여기며 되뇌던 이야기가 알고 보니 진실이 아니었고 세상 보는 각도를 약간 기울였다면 말이다. 마치 기차를 타고 가다 엉뚱한 역에서 내린 모습과 같다. 우연이든 은혜이든, 낯선 장소에 내린 당신은 달라진 거 없이 그대로일지라도 계속 앞으로 나아갈 기지를 발휘해야 한다.
지금껏 고질적이고도 실존적인 문제라 여겼던 통증과 병약함을 바로잡을 최첨단 의학 기술이 내 앞에 놓여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시각이 근본적으로 바뀌었다. 달라진 시선은 미래를 열었고 과거에 엷은 색을 입혔다. 늘 그렇듯 예상치 못한 일이 일어나면 어제의 영향력은 무장해제되지 않는가. 서구의 스토아 사상은 무엇이든지 정신력에 달렸다고 하지만, 신체가 건강함을 선언하기 전까지 정신은 건강함이라는 개념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다. 통증이나 절박한 집중력 없이 언젠가 제대로 걸을 수 있다는 개념은 내게 생소했고 믿음의 도약을 필요로 했다. 나는 수술 뒤 몇 달이 지나도록, 내 오른발이 뇌의 허락을 구하지 않고 계단을 오르는 모습을 보기 전까지, 제대로 걸을 수 있다는 사실을 믿지 못했다. 내 오랜 이야기에 새로운 장이 펼쳐졌고, 완전히 다른 세계가 열렸다.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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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획하지도, 원하지도 않았던
인생의 터닝포인트가 찾아왔다.”
점점 병약해지는 나, 기운차게 성장하는 반려견,
그리고 인생의 두 번째 걷기 수업.
그 가운데 찾아온 고통과 사랑, 절실함과 희망,
그리고 새로운 시작에 대한
작가이자 평론가 게일 콜드웰의 에세이.
〈어느 날 뒤바뀐 삶, 설명서는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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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구독자 님. 잘 지내고 계신가요?
오늘부터 5월 13일까지, 다섯 번에 걸쳐 보내드리는 메일은 작가이자 평론가 게일 콜드웰Gail Caldwell의 에세이, 〈어느 날 뒤바뀐 삶, 설명서는 없음〉 입니다. 아직 그 이름이 생소하실 수도 있을 텐데, 콜드웰은 〈먼길로 돌아갈까?〉(문학동네, 2021)의 저자이자 〈명랑한 은둔자〉(바다출판사, 2020), 〈욕구들〉(북하우스, 2021)의 저자인 캐롤라인 냅의 친구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콜드웰은 〈보스턴글로브〉 북 리뷰에서 오랫동안 평론가로 활동했고, 2001년엔 퓰리처상 비평 부문을 수상하기도 한 작가입니다.
메일 본문에서도 '고질적이고도 실존적인 문제'라고 언급되었지만, 소아마비로 인해 한쪽 다리가 약간 짧은 것은 그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가장 큰 부분 중 하나였습니다. 그런데 중년의 어느 날, 갑자기 나의 정체성과 같은 어떤 부분을 수술로 고칠 수 있단 소식을 듣게 된다면 어떨까요? 콜드웰은 갑자기 자신에게 다가온 변화를 받아들이는 과정을 현재와 과거를 교차해가며 이야기합니다.
언뜻 '힐링되는 치유 에세이인가?' 싶은 설명이기는 하지만, 그렇지는 않습니다. 〈어느 날 뒤바뀐 삶, 설명서는 없음〉은 가장 친한 친구, 부모님, 그리고 오랜 시간을 함께 한 반려견까지 떠나보낸 후의 삶을 이야기하기도 하고, 새로운 만남과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전하기도 합니다. 설명서가 없는 삶을 그가 어떻게 헤쳐 나갔는지, 다섯 번에 걸쳐 보내드릴 메일에서 함께 해주셨으면 합니다.
오늘은 첫 글의 절반을 보내드렸고, 금요일에 나머지 절반을 보내드리려 합니다. 한 해의 삼분의 일이 지난 시점에, 스스로에게 의미 있는 질문을 던질 수 있는 기회를 만나실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 담당자 J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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