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보다도 더 홍콩 영화를 좋아하는 친구가 <열혈남아> 열받는다며 영화를 보기도 전에 장학우와 유덕화 욕을 한 바가지 해서 차마 보지 못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원고를 보니 도전하고 싶은 마음이 몽글몽글 생기네요ㅎㅎ 이번 주말은 <열혈남아>다..!
오늘의 장면 : 유덕화와 장만옥의 <열혈남아> 공중전화 키스신
세상에서 가장 애틋한 <열혈남아> 공중전화 키스신
<열혈남아>에서 장만옥은 란타우섬의 어느 식당 집 딸이었다. 홍콩 시내에 있는 큰 병원에서 진찰을 받기 위해 구룡에 있는 먼 친척 유덕화의 집에 잠시 머물게 된다.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서로에 대한 사랑이 조금씩 싹튼다. 그때만 해도 퉁청 역이 생기기 전이었으니 무이워Moi Wo 페리 터미널은 홍콩과 란타우섬을 잇는 거의 유일한 통로였다. 홍콩 센트럴 지역의 페리 선착장에서 1시간 정도 배를 타고 가는 란타우섬의 무이워 선착장은 바로 그 유명한 <열혈남아>의 공중전화 키스신이 촬영된 곳이다.
서로를 향한 마음을 알면서도 건달에 지나지 않는 유덕화를 온전히 마음에 품을 수 없었던 장만옥은 병원 진료가 끝나면서 다시 란타우섬으로 돌아갔고, 고백조차 하지 못한 채 어색하게 장만옥을 떠나보낸 유덕화는 무이워 선착장에서 하염없이 장만옥을 기다린다. 드디어 장만옥이 나타나는데 그의 곁에는 마치 약혼자처럼 느껴지는 남자가 서 있다. 재미있게도 그 남자 역할의 배우는 왕가위의 모든 영화를 책임졌던 단짝 장숙평 미술감독이다.
상황을 오해한 유덕화는 장만옥에게 짧은 인사만 건네고 아쉬움을 뒤로한 채 센트럴로 향한다. 그러던 중 배 위에서 장만옥의 삐삐 문자메시지를 받고 다시 무이워로 향하는 배에 몸을 싣는다. 무이워와 센트럴이 1시간가량 걸리는 거리인데, 그 둘은 처음 만나서부터 차마 시원하게 얘기를 못한 탓에 왔다 갔다 무려 3시간 정도를 돌고 돌아 만나게 된 것이다.
무이워 선착장 앞 공중전화 부스. 유덕화와 장만옥은 이곳에서 애틋한 키스신을 찍었다. 또 유덕화는 이 부스에 기대어 장만옥을 기다렸다.
터미널 앞으로 보이는 버스 정류장의 모습이 영화 속 그대로다.
무이워 선착장 앞 버스 터미널에서 마냥 기다리고 있던 장만옥을 낚아챈 유덕화는 공중전화 부스로 냅다 달린다. 그 길고 열정적인 키스신의 이유는 바로 그 원치 않은 기다림 때문이었을 것이다. 선착장은 이후 공사를 거쳐 좀 달라진 모습이긴 하지만, 영화를 보다 보면 유덕화가 장만옥을 기다리던 공중전화 부스와 페리 터미널의 ‘무이워梅窩’라는 한자가 그대로 보인다. 전화 부스 역시 세월이 흘러 공사도 좀 했고 당연히 광고판이나 벽지를 바꾸긴 했지만 위치는 그대로다. 페리 터미널 앞으로 보이는 아파트와 버스 정류장의 모습도 옛날 그대로다. 나중에 장학우가 심각한 말썽을 부리기 전까지 유덕화와 장만옥이 동거하는 동안 이곳은 <열혈남아>에 여러 번 등장한다.
유덕화가 장학우를 구하기 위해 란타우섬을 떠나면서 왕걸의 주제곡에 맞춰 장만옥과 마지막 인사를 한다. 페리를 타기 전 무이워 선착장 앞 바로 그 공중전화 부스에서 ‘몸 건강히 꼭 돌아오라’는 장만옥의 음성 메시지를 받은 유덕화는 그렇게 란타우섬을 떠나서 결국 돌아오지 못한다. 운명의 장난처럼 함께 긴 키스를 나누며 사랑을 확인했던 전화 부스에서 그 마지막 메시지를 받고 떠난 것이다. 더 슬펐던 것은 메시지를 받고 페리를 타러 걸어갈 때 유덕화의 마지막 뒷모습을 보면 엉덩이가 심하게 청바지를 먹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미 거기서 유덕화가 지닌 삶의 무게와 고통이 그대로 느껴졌다.
하나의 공간 안에 이렇게 서로 다른 영화가 만나고,
별개로 흘러갔던 서로의 시간이 겹쳐져
이야기를 건네는 곳이 홍콩 말고 또 있을까.
아무리 변해간다 해도 영화가 있는 한 홍콩은 영원한 홍콩이다
〈방구석 1열〉, 〈무비건조〉의 영화평론가,
주성철 기자의 홍콩영화 성지 순례기
〈헤어진 이들은 홍콩에서 다시 만난다〉
30년 만에 열혈남아를 다시 본 원조 홍영러 차장🌸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넷플릭스에서 다시 보았을 때 이 장면이 예전처럼 아름답게 보이지 않고 너무 거칠게 느껴졌어요. 30년 동안 저의 감수성이 많이 변했나 봐요.
두근두근 새 책의 홍보 담당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글을 읽다가 마지막에 빵터졌네요ㅋㅋㅋ! 아직 안 본 영화라 직접 보면 어떨지 모르겠지만, 왠지 이것도 홍콩영화 특유의 황당찌질하지만 이상하게 기억에 남는 그런 장면일 것 같네요.
여전히 <열혈남아>는 도전할 엄두가 안 나는 영.레터 담당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홍영사랑꾼 디자이너께서 이번 주말에 <열혈남아>에 도전해본다고 했지만... 저는 이런 실수를 하는 남자가 나오는 영화는 괴로워서 차마 엄두가 안 나네요... 공감성 수치라고 해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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