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파제 - 上
며칠 전, 연말을 맞아 부모님 집에 놀러 갔다. 동행인은 오직 딸 한 사람. 어린이집은 방학이었고 내 회사는 휴무였으나, 아내의 직장은 여전히 분주하게 돌아가는 탓에 모처럼 유닛 활동을 하기로 한 것이었다.
나는 엄마를 모시고 쇼핑을 가기로 했다. 꼭 뭘 사야 한다기보다 엄마와 그런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 “이 모자 예쁘네. 가격도 괜찮아. 써볼까? 잘 어울려?” 이런 얘길 하면서 걷는 시간. 발이 아파오면 커피숍에 들어가 뜨거운 차를 마시면서 근황을 묻는 시간. 굳이 사랑한다고 말하지 않아도, 덕분에 올해도 잘 보낼 수 있었다고 말하지 않아도 그런 마음이 자연스럽게 전해지는 시간을.
한바탕 상점들을 둘러본 뒤, 우리는 커피숍에 앉았다. 엄마가 말했다.
“오랜만에 너랑 외출해서 수다 떠니까 너무 좋다.”
뭔가 짠했지만, 엄마에게서 ‘너무 좋다’라는 감흥을 끌어냈다는 사실에 만족했다.
“일전에 엄마가 쓰러진 적이 있잖니.”
이어진 엄마의 말에 목구멍이 막혔다. 입안으로 들어간 차가 식도로 들어가지도 입밖으로 나오지도 못하고 우왕좌왕했다.
“병원 다니고 있긴 한데, 회복되고 있는 건 아니야. 그러니까….”
엄마의 말은 그런 거였다. 엄마는 언젠가 죽는다.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그건 꽤 갑작스럽게 일어날지도 모른다. 당장 뭘 해야 한다는 건 아니지만, 부디 그 사실을 알고 있어라.
조금 당황스러웠지만, 이런 시간을 가질 수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언젠가 우리는 헤어진다. 그렇다면 헤어짐에 대해 미리 대화하는 시간을 갖는 것이 좋을 것이다.
“나는 엄마랑 살아서 기뻤어.”
나도 모르게 내일 헤어질 사람처럼 말해버렸다. 모자의 대화가 다음으로 전개되기 전, 딸아이가 똥을 지려버리는 바람에 우리는 커피숍에서 철수하기로 했다. 집으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 나는 엄마에게 말했다.
“또 이렇게 외출하자. 쇼핑도 하러 오고, 명동에 가서 엄마가 좋아하는 칼국수와 교자도 함께 먹자.”
꼭 그렇게 하자고, 엄마도 말했다.
다음 날 순이가 왔다. 엄마는 능숙한 솜씨로 떡국을 끓여 주었다. 우리는 모두 한 살씩 더 먹으면서, 서로의 얼굴을 살폈다. 떡국을 먹은 탓인지 모두의 얼굴이 이전보다 조금 낡아 보였다.
한바탕 산책을 마치고 돌아와 누구는 잠이 들고 누구는 소파에 파묻혀 TV를 봤다. 나와 순이는 한쪽 방에서 수다를 떨었다. 그러다가 내가 물었다.
“여보는 언제 외로워?” “주변 사람들이 나이 먹는 걸 볼 때.” “예를 들면?” “아까 아버님하고 거실에 앉아 있는데, TV에서 우리의 손도 나이 들어간다고 하더라. 아이의 손이 있고 청년의 손이 있고 노인의 손이 있다는 거지. 손에도 주름이 박히고, 세월이 묻는다는 거야. 그런 장면이 나오는데 아버님이 불쑥 당신의 손을 들어서 지그시 보시더라고. 그러곤 말없이 다시 손을 내려놓으시더라.”
순이는 그 모습이 무척 슬펐다는 듯이 말했다.
“그걸 보는 게 외로웠어?” “응.” “당신이 말하는 외롭다는 건, 다른 형용사로 하면 어떤 감정인데?” “두려움인 것 같아. 내가 아는 사람들이 떠나고 나 혼자 남겨질 것 같은 두려움.”
“내가 느끼는 외로움도 그런 종류인 것 같아.”
외로움이란 단어를 정의하는 것으로 새해 첫날의 일과를 마친 우리는 잠깐 낮잠을 잤다. 자고 있는 순이의 눈가에는 전에 없던 주름이 내려앉아 있었다.
계속 |